[아이뉴스24 홍성효 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의 수혜 범위가 초고압변압기에서 배전기기로 넓어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외부 전력망에서 대규모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변압기뿐 아니라 내부 서버와 냉각장치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나눠 공급하는 배전반, 배전변압기, 차단기 등이 필요하다. 이에 국내 업체들의 수주 영역도 변압기 중심에서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설비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LS일렉트릭은 올해 상반기 북미 시장에서 배전기기 수주가 변압기 수주를 넘어섰다. 과거에는 북미 수주에서 변압기와 배전기기 비중이 비슷했지만, 올해 들어 데이터센터용 배전반을 중심으로 수요가 빠르게 증가했다.
AI 데이터센터 관련 수주 증가세는 더욱 뚜렷하다. LS일렉트릭의 올해 상반기 글로벌 빅테크 관련 수주는 약 1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실적 약 8000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최근 대형 수주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다. LS일렉트릭은 지난 8월 북미 빅테크 기업의 AI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2309억원 규모의 전력설비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지난 6월 체결한 1064억원 규모의 38킬로볼트(kV)급 고압 배전 시스템 계약이 고객사의 물량 확대 요청으로 두 배 이상 증액됐다.
같은 달에는 미국 블룸에너지와 약 486억원 규모의 배전 솔루션 공급계약도 체결했다. 미국 와이오밍주에 건설되는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에 저압 배전반을 비롯한 주요 배전 시스템을 공급하는 사업이다.
배전기기는 초고압변압기보다 상대적으로 납기가 짧다는 장점도 있다. 초고압변압기는 공급업체가 제한돼 계약부터 납품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지만, 배전기기는 제품을 비교적 빠르게 공급해 수주를 매출로 연결할 수 있다.
LS일렉트릭은 미국 유타주와 텍사스주 생산거점을 기반으로 현지 영업·설계·생산·서비스 체계를 구축했다. 회사는 이 같은 현지 대응력과 납기 경쟁력이 데이터센터 배전 시스템의 반복 수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HD현대일렉트릭도 AI 데이터센터를 새로운 수요처로 확보하고 있다. 회사는 데이터센터 관련 신규 수주 비중이 지난해 1.8%에서 올해 6.3%로 높아지고, 내년에는 15%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7월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최대 1조1212억원 규모의 전력기기·배전기기 장기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이 가운데 배전기기 계약 규모는 5539억원이다. 관련 제품은 북미에서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에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공급된다.
이번 계약은 변압기와 배전기기를 함께 공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데이터센터 고객이 전력 공급과 분배에 필요한 설비를 패키지로 발주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사업 영역도 개별 제품에서 종합 전력 인프라로 넓어지고 있다.

효성중공업도 변압기 이외 전력기기에서 데이터센터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고압변압기와 초고압차단기 등 전력기기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차단기 수주와 무효전력보상장치(STATCOM) 등 전력 안정화 설비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STATCOM은 전력 사용량이 급격히 변할 때 전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돕는 설비다. 고성능 연산장비가 대규모로 설치돼 전력 부하 변동이 큰 AI 데이터센터가 늘수록 관련 설비 수요도 확대될 수 있다.
효성중공업은 북미 현지 공급망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에너지 인프라 기업 콴타서비스 측과 초고압차단기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합작법인은 오는 10월부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72.5~800kV급 초고압차단기를 생산하며,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노후 전력망 교체에 따른 현지 수요에 대응할 예정이다.
데이터센터용 배전기기 수주가 늘면서 업체들의 경쟁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초고압변압기 같은 개별 제품의 생산능력과 납기가 주요 경쟁 요소였다면, 앞으로는 변압기와 배전반, 차단기, 전력 안정화 설비를 데이터센터 사양에 맞춰 패키지로 공급하는 역량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차세대 직류(DC) 배전도 새로운 경쟁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직류 배전은 데이터센터 내부의 전력 변환 단계를 줄여 전력 손실을 낮출 수 있어 고전력·고밀도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다.
LS일렉트릭은 지난 8월 GS건설과 AI 데이터센터용 직류 배전 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직류 배전과 모듈러 데이터센터 관련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GS건설이 추진하는 데이터센터 사업에 배전반과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초고압변압기 등 주요 전력기기를 공급하기로 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될수록 외부 전력을 받아오는 변압기뿐 아니라 내부에서 전기를 나누고 통제하는 배전기기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 변압기에서 시작된 전력기기 호황이 배전반·차단기·전력 안정화 설비로 번지면서 국내 업체들의 수주 기회도 넓어지고 있다.
/홍성효 기자(shhong0820@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