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황세웅 기자] "아직 만지시면 안 됩니다. 열로 한 번 더 눌러야 해요."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서.일.페) V.21'. 브라더코리아 부스에서 막 인쇄된 티셔츠가 프린터 밖으로 나오자 직원이 관람객의 손길을 막아섰다.

새하얀 티셔츠 위에는 몇 분 전 관람객이 고른 캐릭터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직원이 티셔츠를 열 프레스에 올린 뒤 덮개를 내렸다. 열과 압력으로 잉크를 원단에 고정하는 마지막 공정이다.
잠시 후 프레스가 다시 열리자 세상에 단 한 장뿐인 티셔츠가 완성됐다.
디자인 선택부터 인쇄, 열 압착과 포장까지 걸린 시간은 약 2~3분. 프린터 헤드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빈 원단 위에 색과 윤곽이 채워지는 모습을 관람객들은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이날 브라더코리아가 선보인 장비는 다이렉트투가먼트(DTG) 프린터 'GTX-423'이다. 일반 프린터가 종이에 잉크를 분사한다면 GTX-423은 티셔츠와 가방 등 원단에 디자인을 직접 인쇄한다.
관람객은 작가 부스에서 원하는 디자인과 티셔츠 사이즈를 선택한 뒤 주문서를 들고 브라더코리아 부스를 찾았다. 작업자가 디자인 파일의 위치와 크기를 조정하자 프린터가 곧바로 작동했다. 별도의 판이나 필름 제작 과정 없이 주문이 들어온 만큼 한 장씩 생산하는 방식이다.

광명에서 온 한모 씨(31)는 좋아하는 일러스트 작가가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장을 찾았다.
그는 "좋아하는 작가의 캐릭터가 들어간 티셔츠를 현장에서 바로 살 수 있어 좋았다"며 "그림이 겉에 두껍게 붙은 느낌이 아니라 원단에 스며든 것처럼 인쇄돼 통기성이 좋고 입었을 때도 답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 처음으로 티셔츠 판매에 나선 '심양즈'의 최성곤 작가 역시 주문형 제작의 장점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기존에는 그림과 소품을 주로 판매했지만 이번 협업을 통해 별도 재고 없이 의류 상품을 선보였다.
최 작가는 "개인적으로 티셔츠를 만들어 본 적은 있지만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그림의 색감과 분위기가 티셔츠에 어떻게 표현될지, 관람객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크기별로 여러 장을 미리 만들어 둘 필요가 없고 손님이 구매하면 현장에서 바로 제작해 준다는 점이 편리하다"며 "컴퓨터로 작업한 색상과 그라데이션도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다른 작가들도 어디서 제작했는지 물어볼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고 덧붙였다.
브라더코리아는 행사 참가 작가들을 대상으로 프린트 온 디맨드(POD) 협업 신청을 받아 약 120개 부스와 협업했다.
작가가 디자인 파일을 제출하면 회사가 전시용 티셔츠를 미리 제작하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현장에서 같은 제품을 출력하는 방식이다.
POD는 판매량을 예상해 상품을 대량 생산할 필요가 없다. 디자인 파일만 바꾸면 서로 다른 그림을 연속해서 인쇄할 수 있어 수요 예측이 어려운 신진 작가와 소상공인에게 적합하다.
GTX-423에는 원단 인쇄용 피에조 프린트헤드와 흰색을 포함한 5색 수성 안료잉크가 적용됐다. 최대 해상도는 1200×1200dpi다. 출력 전 원단에 전처리제를 입히고 인쇄 후에는 열 프레스로 잉크를 경화해 내구성을 높인다.

필름을 원단 위에 붙이는 방식과 달리 잉크를 직접 분사해 인쇄 부분이 두껍게 들뜨지 않고 통기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티셔츠뿐 아니라 후드티와 가방, 모자, 양말, 노트북 파우치, 캔버스화 등 방수 처리되지 않은 원단에도 인쇄할 수 있다.
브라더코리아는 굿즈 제작 사업을 지원하는 '브라더 메이커스 랩'도 소개했다. 사업 상담과 샘플 제작부터 장비 설치, 작업자 교육, 초기 생산 지원과 정기 점검까지 제공한다. 단순한 장비 판매를 넘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실제 상품으로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시장 안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혼잡할 경우 밖에서 휴식한 뒤 재입장할 수 있다는 안내 방송이 반복됐지만 프린터 앞에 모인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화면 속 그림이 실제 옷으로 바뀌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였기 때문이다.
완성된 티셔츠를 받아 든 관람객은 캐릭터가 구겨지지 않도록 옷을 펼쳐 들고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주문부터 제작까지 불과 3분. 일러스트 한 장이 세상에 하나뿐인 의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