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잘 먹는데 계속 살이 빠지는 암 환자의 몸. 서서히 말라가게 하는 치명적 합병증 ‘암 악액질(Cancer-associated cachexia)'을 막을 새로운 길이 열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팀이 뇌의 신호를 차단해 근육 손실을 막고 생존 기간을 늘릴 수 있는 RNA 치료 전략을 개발했다.
KAIST(총장 배충식) 의과학대학원 송민호 교수와 김진국 교수 공동연구팀과 교원창업기업 토르 테라퓨틱스(THOR Therapeutics, 대표 송민호)가 공동연구를 통해 뇌에서 식욕과 에너지 소비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인 GFRAL의 작동을 억제해 암 악액질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원리를 규명했다.
암 악액질은 전체 암 환자의 50~80%에서 발생하는 대표적 합병증으로 알려져 있다. 암세포가 몸의 대사를 교란하면서 음식을 충분히 먹어도 체중과 근육이 계속 줄고 극심한 쇠약을 겪는다. 항암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 생존율까지 낮아지는 주요 원인이다.

연구팀은 암 악액질의 원인이 몸이 아닌 뇌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암세포가 분비하는 GDF15(Growth Differentiation Factor 15, 암이 진행될 때 많이 분비되는 신호 단백질)가 뇌간의 GFRAL(세포가 신호를 받아들이는 단백질)과 결합하면‘먹지 말고 몸에 저장된 근육과 지방을 쓰라’는 신호가 전달돼 몸이 점점 쇠약해진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연구팀은 김진국 교수 연구팀과 함께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특정 유전자의 작동을 선택적으로 막는 RNA 기반 유전자 치료 기술)를 이용해 GFRAL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치료제를 개발했다.
암세포가 보내는‘몸을 말라가게 하라’는 명령을 받는 스위치를 꺼버린 것이다. 이 치료제는 RNA(유전정보를 단백질로 만드는 중간 전달물질) 단계에서 GFRAL 생성을 막아 암 악액질을 일으키는 신호 자체를 차단한다.
연구팀은 암 악액질이 진행 중인 실험쥐에 이 치료제를 투여했다. 그 결과 근육과 지방 손실이 크게 줄고 무너졌던 대사 기능이 회복됐다.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뒤 치료를 시작했음에도 연구 종료 시점(약 50일) 기준 생존율은 비투여군 20%, Gfral ASO 투여군 90%로 큰 차이를 보여 암 악액질 치료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식욕만 높이는 기존 치료와 달리 몸을 말라가게 만드는 신호 자체를 차단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근육 손실과 대사 이상을 함께 개선했다. 앞으로 기존 항암 치료와 병행해 암 환자의 삶의 질은 물론 치료 효과와 생존율까지 높일 수 있는 차세대 항암 보조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송민호 교수는 “기존 치료제가 식욕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데 그쳤다면 이번 연구는 뇌간의 핵심 수용체를 RNA 수준에서 직접 표적해 암 악액질의 근본 원인을 억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후속 비임상 연구와 약물 생산, 품질관리 체계를 차질 없이 진행해 2030년 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에 착수하고 암 환자의 삶의 질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치료제로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의과학대학원 홍현정 박사, 토르 테라퓨틱스 이민희 박사, 의과학대학원 박민성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송민호 교수와 김진국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연구 결과(논문명: Therapeutic Gfral silencing via antisense oligonucleotides ameliorates cancer-associated cachexia and extends survival in tumor-bearing mice)는 국제 학술지 ‘셀 리포트 메디신(Cell Reports Medicine)’에 7월 27일자로 실렸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