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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39> 스마트돌봄을 향한 글로벌 선도도시 후쿠오카시를 가다


큐슈의 최대 도시이자 일본 5대 도시인 후쿠오카는 부산에서 쾌속 페리선을 타면 3시간 40분이면 도착한다. 쓰시마해류를 타고 한 달음으로 도착하니 오래전부터 한일의 역사가 만나고 부대끼는 무대가 돼왔다. 후쿠오카는 한국인에게만 친숙한 도시가 아니다. 연간 200만 명의 외국인들이 후쿠오카를 통해 일본에 입국하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현관이다.

과거 일본 정벌을 앞두었던 여몽연합군도, 교역을 요청하던 네덜란드 상선도 이곳 후쿠오카의 문을 두드렸다. 초고령국가 일본의 현관인 후쿠오카는 이번에는 전 세계를 향해서 문을 열어 젖히고 있다. 동아시아 거점도시로서의 위상을 활용해 지금 전력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상품이 바로 '카이고'(개호)이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

텐진역 인근 후쿠오카시민복지프라자 3층에 위치한 '개호실습센터'를 방문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이 곳은 일반 시민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개호(돌봄) 교육을 실시하고 복지용구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만도 대규모 복지용품 전시장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해마다 열리는 국제복지용구전시장도 찾아 보았지만, 매번 새롭고 재미있다.

휠체어, 보행기, 목욕용품, 개호용 침대 등 늘 똑같은 카테고리의 물건들이 해마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디자인을 바꾸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 역시카테고리별로 1500여 점의 물품이 전시돼 있는데,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실용성이 가미된 신상품들이 방문객들을 감탄하게 한다.

휠체어만 해도 장애 정도와 유형에 따라 소재와 형태가 다르다. 자동차에 싣고 내리기 편리한 접이식 휠체어는 트랜스포머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네 개의 바퀴가 달린 휠체어가 버튼 하나를 누르자 혼자서 접히고 구겨지면서 트렁크 크기로 변신한다. 보호자들이 무거운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내릴 때 끙끙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벼운 휠체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휠체어가 어느 정도 안정감이 있어야 하니 무조건 경량으로 만들 수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 매번 더 좋은 상품이 등장한다. 경사로를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휠체어, 바퀴의 모양에 따라 앞뒤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휠체어도 등장했다.

일본 후쿠오카시민복지프라자 3층에 위치한 '개호실습센터'는 최근 다양한 기능을 지닌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자동으로 접히는 휠체어. [사진=조인케어 제공]

이제 생각만으로 원하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휠체어, 나의 이동패턴을 기억해서 혼자서 굴러가는 자율주행 휠체어가 등장할 날이 머지 않았다.

보행을 도와주는 보행기들도 진화하고 있다. 레이저와 진동을 이용해서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는 노인이 보행연습을 할 수 있도록 개발한 보행기도 있다.

손잡이에서 진동이 울리는데 리드미컬한 진동에 맞추어서 발걸음을 옮겨놓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행 훈련이 이뤄진다. 안내를 맡은 하세가와 노리유키씨는 "보행기를 고를 때 바퀴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큰 바퀴는 잘 굴러가지만 쉽게 넘어질 수 있으므로 보행이 불안한 노인에게는 좋지 않다.

냄새를 잡아주거나 소변을 고형물로 바꾸어서 변기 청소를 용이하게 한 이동식 변기도 압권이다. 물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는 샴푸, 마비가 있는 사람들도 혼자서 신고 벗기 편리한 신발 등 물건들은 사람들의 장애와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뼈를 깎고 몸을 달구는 변신을 하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시민복지프라자 3층에 위치한 '개호실습센터'는 최근 다양한 기능을 지닌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식당에서 서빙하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등장한 쟁반이 달린 보행기. [사진=조인케어 제공]

이 곳에는 배리어프리사회를 위한 발명품과 시스템도 소개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도로에 올록볼록 점철 처리를 한 바닥은 일반인이나 휠체어가 다니기에는 불편하다. 새로 나온 보도가이드웨이는 소재를 달리해서 시각장애인의 도로인식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일반인들이 장애없이 길을 걷게 해주면서도 시각장애인의 지팡이가 닿으면 자라자라, 후카후카, 퐁퐁등 서로 다른 소리와 촉각으로 길을 알려준다.

이 곳은 단순히 전시장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용품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고 물건을 고르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 하세가와씨는 지팡이를 고르는 요령으로 "걸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어깨와 등이 굽기 때문에 지팡이를 고르는 기준은 걸을 때 팔꿈치가 구부러지는 정도에 맞추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쓰임새가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의 경험이 중요하다. 제조업체들은 장애와 개호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리빙랩의 방식으로 제품 개발을 한다. 치매·장애노인, 간병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수집하는 등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일본 후쿠오카시가 운영하는 개호실습보급센터의 가이드를 맡은 하세가와 노리유키씨가 시설과 시설 내 기구에 관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지난 20여 년 동안 더딘 걸음을 하던 복지용구가 최근 빠르게 발전하는 이유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기준으로 국내 시장 규모만 해도 1271억 엔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기저귀, 지팡이, 노인영양식등 노인용품에 대해 글로벌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전 세계가 일본의 뒤를 따라서 고령화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복지용구와 개호로봇 등을 국가 전략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복지용품은 과거 후생노동성의 소관이었지만 지금은 수요 파악, 생산, 실증연구, 확산을 위해 후생노동성과 경제산업성이 두 개의 바퀴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 두 개의 부처가 공동의 플랫폼을 만들어 기업을 지원하고 개호로봇의 안전성, 윤리성, 사용 편이성의 실증 연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구호가 공생, 창의, 실증이다.

덕분에 일본의 '개호'라는 말은 점차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으며, 치매노인을 위해 만든 로봇 파로, 배변감지센서 'Dfree'는 이미 전 세계인에게 저팬메이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개호산업이 새로운 글로벌전략산업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이러한 움직임의 선두에 서 있는 곳이 바로 후쿠오카시이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면서 신문물을 가장 빨리 접했던 곳인 만큼 후쿠오카시는 이노베이션과 스타트업이 강한 전통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일본내 21개 대도시 가운데 3년 연속 스타트업이 가장 많이 배출된 곳이다. 국내에서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많은 인재들이 후쿠오카시에 와서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도록 시가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의료, 건강, 개호쪽의 스타트업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동아시아를 향해 열려있는 후쿠오카시는 최근 '노인복지용구'를 비롯한 개호상품을 글로벌 전략 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일본 후쿠오카시청 모습. [사진=조인케어 제공]

후쿠오카시의 이노베이션추진·스마트이스트담당주사인 타케시 츠츠미씨는 "후쿠오카는 다른 도시에 비해 인구구성이 10년 이상 젊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나는 곳도 바로 후쿠오카다. 그리고 1년 생산 규모가 7조 엔으로 저개발국의 1년 생산 규모에 맞먹을 정도로 경제 규모가 크다. 지금은 경제에 활력이 있지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3%를 넘는 등 후쿠오카도 고령화를 피할 수는 없다.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고령인구가 더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에 고민"이라고 위기의식을 전한다.

고령화의 정점을 향해 빠르게 늙어가는 가운데 이노베이션을 통해서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가 분명하다. "결국 우리가 가장 앞서 있는 분야에서 신산업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카이고'(개호)를 국제공용어로 만들자는 목표의식이 있다"고 덧붙였다.

스타트업 육성 이외에도 대기업들을 혁신과 이노베이션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큐슈대학의 옛 캠퍼스인 이토캠퍼스를 기업들에게 분양해서 신제품의 테스트베드로 만들려는 노력도 그 하나이다. 동서 2.5㎞, 남북 3㎞의 캠퍼스 부지를 이용해서 AI와 자율주행, 드론을 활용한 새로운 교통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한 예인데 NTT와 소프트뱅크가 이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은 전통기업이 많고 변화가 느리다는 평을 들어왔다. 후쿠오카에서 이노베이션을 부르짖지만, 변화와 혁신이 국민 유전자인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느리고 보수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고 있는 도전은 견고하고 단단하다. 헬쓰케어스타트업들이 정부지원금을 졸업하고 실제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곳도 일본 이외에는 보기 어려운 실정이 이를 말해준다.

전 세계가 고령화의 몸살을 함께 앓으며, 스마트돌봄을 향해 기술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갈짓자로 전력질주하지만 일본의 한 걸음, 한 걸음 용의주도하게 움직이고 있다. 변화를 위한 변화를 추구하며 목욕물에 아기를 떠내려 보내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옥동자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는 불안감을 지우기 어렵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는 30대에 초고령국가 일본에서 처음 노인문제를 접한 뒤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노인문제전문가로 나섰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을 썼으며 연령주의, 치매케어등을 연구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 현장을 만들기 위해 '사람중심케어실천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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