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라이더 고용보험 코앞인데…근로복지공단 "배달관리 프로그램 고쳐라"


배달대행 플랫폼사에 늦장 요구…중소업체 '날벼락'

[아이뉴스24 윤선훈 기자]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들이 자신의 배달 프로그램을 급작스럽게 뜯어 고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같은 문제는 근로복지공단이 내년 1월 1일 시행되는 고용보험법 및 고용산재보험징수법(고용보험법 개정안) 시행 전까지 자신들이 세운 기준에 따라 플랫폼 업체들의 배달 프로그램 개편을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그도 그럴것이 개정안 시행이 임박한 상황에서 업체 자율적인 개편이 아닌 공단의 일방적인 프로그램 조정에 더해 예정에 없던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해 개발인력 투자와 비용, 시간을 마련하는데 여건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짜맞추기로 인해 영세한 배달 플랫폼 업계 입장에서는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배달대행 오토바이가 일렬로 주차돼 있는 모습 [사진=우아한형제들]

◆프로그램으로 A부터 Z까지…배달 플랫폼사는 '부글부글'

23일 업계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 9월부터 두 달에 걸쳐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들과 순차적으로 만나 개별 라이더들에 대한 소득신고 의무화와 보험료 징수 세부안에 관한 협조 사항을 통보했다. 이 자리에서 공단은 각 업체들에 법 시행 전까지 기존 주문·라이더 배차 프로그램 등을 자신들의 요구사항에 맞게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지침도 전달했다.

공단이 각 플랫폼사에 전달한 '노무제공 플랫폼 사업자의 고용보험 신고 사항 개요' 공문을 보면, 공단은 플랫폼사들에 대해 "노무제공자와 노무제공사업주의 건별·일별 노무제공대가의 고용보험료 공제 프로그램을 개발해 노무제공자별과 노무제공사업주별 공제금액에 대한 조회가 가능하도록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노무제공자란 라이더, 노무제공사업주는 지역 배달대행업체를 일컫는다.

배달업계는 크게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등 배달앱 업체들과 생각대로·바로고·부릉 등으로 대표되는 배달대행 플랫폼사, 그리고 배달대행 플랫폼사들과 계약을 맺은 지역 배달대행업체로 나뉜다. 소비자가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배민라이더스' 등 배달앱 업체를 이용하는 라이더들이 배달할 수도 있지만 지역 배달대행업체의 프리랜서 기사들이 배달대행 플랫폼을 활용해 주문을 받는 경우도 많다.

공단이 플랫폼사에 요구하는 정보는 광범위하다. 전체 노무제공 횟수, 건별 노무제공사업주 리스트, 보험료 공제 금액 등은 물론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이용사업자수, 노무제공자수, 일별 또는 월별·연도별 콜 건수, 신규·소멸 사업자 수 등의 정보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단은 시행 취지와 관련 "플랫폼 종사자 고용보험 도입과 관련된 소속 노무제공사업주에 대한 자료를 공단과 공유, 확대 보험제도에 대한 홍보 및 안내를 통해 제도의 시행 초기 혼선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수 배달대행 플랫폼사들은 일단 이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러나 속은 바짝 탄다. 당장 고용보험법 개정안 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복지공단이 너무 촉박하게 프로그램 구축 요구를 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일정을 맞춰야 하다 보니 개발자·기획자 할 것 없이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매달리고 있다.

배달대행업체 한 관계자는 "공단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 6~8개월 정도의 개발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공단에서 지시가 내려온 이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시간이 빡빡한 것이 사실"이라며 "단순히 기능 몇 가지를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문·배차 플랫폼 전반의 데이터 흐름 등도 감안해야 하고,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과도 연관이 돼 있다 보니 개발뿐만 아니라 기획·재무 전반적으로 다 관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쓰는 업체들은 어렵사리 대응하고 있지만, 외주 업체에 플랫폼 개발·운영 등을 맡긴 중소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들은 실질적인 대응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주요 배달대행 플랫폼은 모두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60개 이상의 중소 배달대행 플랫폼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할 역량이 없어 외부 시스템통합(SI)업체 등에 외주를 맡긴 상태다.

배달대행업체 다른 관계자는 "자체 개발할 여력이 되지 않아 외주를 주고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있는데 공단에서 갑자기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라고 지시하니 당황스럽다"라며 "SI업체와 최대한 소통을 해 보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당장 내년 1월 법 시행 이후에 대해 걱정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공단 전국민고용안전망강화추진팀 TF 관계자는 "올해 1월 법이 통과되고 7월부터 택배기사 등 12개 업종에 먼저 고용보험이 적용되면서 라이더들에 대해서도 고용보험을 빠르게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해명했다. 외주로 프로그램을 구축한 업체가 있다는 점과 관련해서는 "플랫폼사와는 별개로 실제 프로그램 개발사를 만나 이 같은 사항을 전달했다"고 답했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부분 수두룩…공단 "시간 촉박했던 것은 맞다"

공단도 업계의 분위기를 인식하고 프로그램 구축 완료 시점을 개정 고용보험법 시행 시점인 내년 1월 1일이 아닌 6월 말까지로 정했다. 이는 공단이 라이더들의 소득정보 취합을 위해 구축 중인 소득 정보 공유시스템이 완성되는 시기로, 플랫폼사들의 프로그램을 통해 정리된 데이터가 공단의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구조다.

다만 법 시행 후부터 라이더들의 소득정보 내역을 플랫폼사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 구축을 마치지 못한 업체들은 그전까지 라이더들의 건별 주문을 바탕으로 한 소득정보를 하나하나 수기로 정리해야 하는 형편이다.

대형 플랫폼사의 경우 등록된 배달기사 수는 2~3만명 수준으로 파악되는데, 이를 일일이 수기로 정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업체들이 무리하면서까지 프로그램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시스템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수기로 하나하나 소득정보를 기재해야 하는데, 수기로 하는 과정에서 금액 등에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 부서를 둬야 한다"라며 "라이더만 수만명에 달하는데 이 작업만 해도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언급했다.

서울 학동역 인근 매장에서 라이더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업체들이 프로그램 구축을 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라이더들의 보험료를 건별로 산정하는 과정에서 소수점 단위의 결과값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라이더 보험료 징수에 보험료율 1.4%를 적용할 예정으로 지역 배달대행 업체와 라이더가 각각 0.7%씩을 분담한다. 보험료는 건별 배달 수익을 토대로 계산되는데, 배달료에 0.7%의 요율을 적용할 경우 자연수 단위에서 숫자가 딱 떨어지지 않고 소수점 이하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 플랫폼사들의 프로그램은 소수점 단위 금액을 기재하지 않아 이를 빠짐없이 기재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개편할 수밖에 없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라이더에 대한 고용보험료를 산정할 때 소수점 단위 금액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백명, 수천명의 소수점값을 누락하면 실제 납부액과 큰 오차가 발생해 빨리 프로그램을 개편할 수밖에 없다"라며 "소수점을 어떻게 처리하라는 명확한 지시도 없고,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무조건 플랫폼사들에 프로그램을 개편하라고 하는 공단의 지시는 그야말로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공단이 플랫폼사에 요구하는 정보가 지나치게 넓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히 플랫폼사업자에 대한 이용사업자수, 노무제공자수, 콜 건수, 신규·소멸 사업자수의 경우 업체들의 핵심 영업 데이터이기 때문에 이를 외부로 공개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업계에서는 개정 고용보험법이 시행돼 라이더들에게 보험료를 징수할 경우 소득 공개에 부담을 느끼는 라이더들이 상당수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업계에서는 최소 10%대 수준의 라이더들이 이 같은 이유로 라이더를 그만두는 등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가뜩이나 라이더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라이더 끌어들이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업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만이 많지만 제대로 내색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다. 이러다 보니 공단은 최근 복수의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 개발자들을 만나 내년 1월까지 프로그램 구축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재차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실태조사 자체는 상반기부터 진행했지만 배달대행 플랫폼이 인허가 사업자가 아니다 보니 실태 파악을 하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더욱이 중소 플랫폼들까지 감안할 경우 플랫폼사별로 수익배분 방식 등이 달랐고 플랫폼사들도 지역배달대행업체들의 사업장 정보나 라이더들의 인적 정보 등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이런 부분들을 고려하느라 세부안 마련에 시간이 걸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플랫폼이 본질적으로 라이더에 대한 사업주가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업주인 지역배달대행업체를 대신해 의무를 부담한 것에 대한 불만은 이해한다"며 "이를 감안해 정부에서도 플랫폼사에 최소한의 개발 비용이나 인력 운영 비용 등은 지원할 것이고 중소형 플랫폼 쪽에 보다 지원을 두텁게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윤선훈 기자(kre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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