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증권가, 리스크 관리는 선택 아닌 '필수'


금소법 전면 시행으로 CCO 속속 선임…경영에도 ‘헷지(hedge)’ 필요

[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법이 그렇게 돼 있으니까 하는 거죠."

독립 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 선임에 대한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법이 정한 바에 따른다'는 당연한 얘기지만, 최근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 전면 시행되면서 뒤늦게 부랴부랴 CCO 선임에 나선 업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라니까 한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지난달 25일부로 금소법이 전면 시행됐다. 금소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은 금융소비자보호를 전담할 조직을 설치하고 책임자로 임원인 CCO를 선임해야 한다. 본래 올해 3월부터 법이 시행됐지만, 내부통제기준 마련 등 시간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입장을 반영해 6개월의 계도기간을 가졌다.

국내 은행들과 대형 증권사들 대부분은 이미 지난해부터 소비자보호 관련 부서 설치와 CCO 배치를 완료했다. 그러나 국내 운용사들은 계도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임박한 9월 들어서야 관련 조치에 나섰다. 법의 적용을 받는 운용사들은 자산총액(AUM) 20조원이 넘는 곳들로, 약 20개 운용사가 이에 해당한다.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도 속속 CCO 선임에 나서고 있다.

금소법 시행 이전에도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자체적으로 준법감시인과 소비자보호, 리스크 관리 부서와 담당자, 임원 등 내부통제시스템을 마련해 운영해왔다. 그러나 금소법에서 금융상품 소비자보호를 위한 별도의 부서와 임원급 책임자를 둘 것을 명시하면서 회사 입장에서 행정적 부담과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규제가 늘어남에 따라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러나 바뀌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고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 자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에 국내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회사들도 앞다퉈 ESG 경영을 도입하고, 그에 발맞춘 시스템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투자자산의 운용 등에 있어 ESG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회사 운영 등 경영 전반에 있어서도 ESG를 고려한 의사결정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 회사마다 금융상품 소비자보호 정책을 강화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특히 라임·옵티머스 펀드를 비롯해 다수 사모펀드들의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하며 금융상품 소비자보호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업계 차원에서도 연이은 대형 금융사고에 추락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환골탈태가 필요했다. 선제적으로 논란이 된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자 보상을 진행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내부통제와 소비자보호 시스템을 강화하고, 윤리선언 등도 잇따라 내놓으며 등 돌린 투자자들을 돌려세울 자정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데 따른 큰 비용을 뒤늦게 치르고 있는 셈이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금융회사들은 일제히 소비자보호 조직 강화에 나섰다. 과거에는 한직으로 여겨졌던 소비자보호담당자가 임원급으로 직급이 강화되고 소위 '에이스'라고 불리는 인사들이 배치되며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금소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잇단 사모펀드 사고를 계기로 소비자보호 영역도 관리가 필요한 중요한 리스크 중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전 국민의 주식투자 시대가 열렸다고 할 만큼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투자자들이 늘었고, 그에 따라 금융투자상품의 소비도 증가하는 추세다.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된다. 단순히 '법 때문에'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소비자보호를 포함한 리스크 관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마진콜'은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리스크 관리 팀장이 회사를 떠나며 부하 직원에게 USB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USB에는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선 파생상품의 문제점들이 지적된 내용이 담겨있었다. 퇴출 1순위에 있던 리스크 관리 담당자 덕에 '비도덕적'인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다.

위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특히 외부적 요인에 취약한 한국의 금융시장은 더욱 그렇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은 금소법 시행에 따른 구색 맞추기를 위한 금융상품 소비자보호 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다. 경영에 있어서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헷지(hedge)한다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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