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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침공] 살람 팍스 전쟁 일기 "21세기판 안네의 일기?"


 

제2차 대전 중 안네 프랑크라는 한 유태인 소녀는 나치 치하의 공포스런 생활을 조심스럽게 담아냈다.

안네 프랑크가 2년 여 동안 공포에 떨며 기록했던 글들은 그 뒤 '안네의 일기'란 아담한 책자로 묶여져 나왔다. '안네의 일기'는 전쟁을 반대하는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며 세계적인 명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2003년.

미-영 연합군이 바그다드에 무차별 폭격을 쏟아붓고 있는 가운데 '평화'를 자처하는 한 이라크인이 인터넷에 올리는 일기가 전 세계 네티즌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살람 팍스(Salam Pax)’란 필명의 29세 이라크 청년이 영어로 연재하는 전쟁 일기가 네티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 바그다드 현실 생생히 묘사

살람 팍스는 아랍어로 '평화'를 뜻하는 말. 살람 팍스는 자신의 웹진(dearraed.blogspot.com)을 통해 사담 후세인의 독재와 미-영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을 함께 비판하고 있다.

온라인 평가기관인 ‘익스트림 트래킹’에 따르면 3월 중 이 사이트 방문객은 9만명을 넘어섰다.

'라에드는 어디 있나?(Where is Raed?)'란 제목을 달고 있는 살람 팍스의 글들은 무엇보다 바그다드의 생생한 현실을 현장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

살람 팍스는 지난 3월 24일에 올린 글을 통해 '지난 이틀 동안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했다'면서 바그다드의 긴박했던 상황을 간접 묘사했다. 그는 또 자신의 사이트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해 준 블로거(Blogger)와 구글 측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3일자 일기에서는 “B-52 폭격기가 출격했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부터 시간을 재기 시작한다. 폭격기는 출격 후 6시간이면 바그다드에 도착한다. 폭격 첫날에는 도착 시간이 정확했는 데, 어제는 6시간이 지나도 폭격이 시작되지 않았다. 깜짝 놀랐다”라고 쓰기도 했다.

그는 또 사이트 왼쪽 상단에 "서구가 승리한 것은 이념이나 가치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조직된 폭력을 적용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가끔 이같은 사실을 망각한다. 아니, 이같은 사실을 아예 알지 못한다"는 사무엘 헌팅턴의 글을 인용해 놓고 있다.

◆ 진위 여부 둘러싸고 논란 고조

살람 팍스의 전쟁 일기가 인기를 끌면서 진위 여부를 둘러싼 논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LA타임스는 지난 31일 '살람팍스가 과연 바그다드에 실존하고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LA타임스는 살람 팍스의 일기에 대해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가 꾸민 이야기(plot)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허구로 드러난 어느 소녀의 백혈병 투병기에서 따왔다는 의혹도 있다고 지적했다.

살람 팍스는 자신의 일기에 대한 진위 논쟁이 불거지자 "제발 진짜냐고 묻는 이메일을 보내지 마라"고 호소했다. 그는 또 자신이 찾고 있는 라에드의 이메일 주소를 공개하기도 했다.

살람은 자신의 사이트에 신분을 감출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전화 번호를 비롯한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진위 논쟁과 함께 살람 팍스의 생사 여부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최근 열흘 동안 글을 올리지 않은 점을 들어 그의 안전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AP통신은 자신들이 살람 팍스에게 보낸 이메일을 되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서비스 제공업체인 구글 역시 살람 팍스에 대해 이렇다 할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다.

◆ "진위 여부 중요치 않다" 주장도

이런 가운데 일부 네티즌들은 '살람 팍스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숨가쁜(breathless) 종군 기자들이나 장성, 정치인들이 외면하는 것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

수시로 살람의 사이트를 체크한다는 앤디 카빈이란 인물은 AP와의 인터뷰에서 "(살람은) 세계가 주목해야만 할 순간을 포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는 실시간 스토리텔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위대한 작가들이 그래왔듯, 살람은 전쟁 경험을 인간적으로 소화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논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살람 팍스는 지난 달 24일 이래 기나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 바그다드의 숨가쁜 현실을 전해주지 않고 있다.

살람 팍스가 21세기의 안네 프랭크인지, 전세계를 상대로 한 탁월한 사기극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살람 팍스의 글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은 분명 비극이라는 것.

살람 팍스는 머나먼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는 많은 이들에게, 17세기 영국 시인인 존 단(John Donn)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되뇌이게 만든다.

"누구를 위하여 조종이 울리느냐고 묻지 마라. 조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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