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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된 매칭…첫 만남의 결과는?


[결혼정보회사 미팅? 그것을 알려주마!](5)

[이혜경기자] 가입한 지 1주일이 지난 시점, 커플매니저가 한 남자회원의 프로필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하지만 당황스러웠다. 아직 자기소개글, 셀프인터뷰도 작성하지 못한 터였다. 남자회원 프로필은 매니저가 임의로 골라서 내게 보내준 것이었는데, 만약 내가 상대방의 프로필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그 상대방에게도 내 프로필을 보낸다고 했다.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는 내게 매니저가 '괜찮은 사람이니 만나보라'고 권했다. 어쩌지? 만나봐? 말아? 에라, 모르겠다! 얼떨결에 만나겠다고 해버렸다. 기억나는가? 건당 60만원짜리 소개팅이었다는 것 말이다. 비싼 만큼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말로만 듣던 결정사 소개팅 체험을 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더 강했던 것일까. 남자1호와의 소개팅은 그렇게 잡히고 말았다.

'헉, 뭘 입어야 되는 거지?'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빛났던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소개팅을 할 때 뭘 입고 나가야 할지 고민도 거의 안 해봤다. 그런데 이번엔 막막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주선하는 소개팅이 눈앞에 닥치다니. 이건 사실 맞선 아닌가. 오 마이 갓! 그러고 보니 나는 진지한 맞선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출근 복장을 하기도 그렇고, 청바지에 티셔츠는 더더욱 아닌 것 같고. 옷장을 아무리 뒤져 봐도 소위 '맞선용 복장'은 보이질 않았다. 이런 낭패가 있나. 고민하다가 패션 감각이 남다른 친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당장 옷을 사야 하는데, 같이 가서 너의 탁월한 감각으로 맞선용 옷을 골라달라고. 착한 후배는 곧바로 달려왔다. 퇴근길, 나는 후배와 함께 백화점으로 달려 갔다.

후배는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블라우스, 스커트, 트렌치코트, 머플러 등의 아이템을 골라줬다. 나 혼자였다면 절대 고르지 못했을 그 감각적인 디자인들이라니. 여성스럽고, 시크한 느낌의 스타일을 주는 조합이었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구나, 감탄하며 후배를 따라 다닌 나는 얌전히 카드나 긁고 있을 따름이었다.

후배는 옷을 골라주면서 입을 때 어떻게 연출해야 하는지도 코치를 해줬다. 선배, 머플러는 이렇게 매고, 트렌치코트는 단추를 잠그지 말고 가볍게 벨트로 느슨하게 매어야 해요, 블랙 스커트니까 스타킹은 검은색을 매치하시고요, 블라블라블라…. 하아, 이것은 거의 신세계였다. 나 같은 패션맹은 도저히 알 수 없을 부분까지 후배는 세심하게 챙겨줬다. 이 부족한 선배를 위해 네가 이렇게까지 애써주는구나, 정말 고맙다 후배야, 흑흑.

약속 날짜는 며칠 후인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그 며칠 동안 남자1호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찾아봤다. 몇 군데 검색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싸이월드에 그 사람의 미니홈피가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미니홈피에 들어갔다. (지금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대세지만 그때는 웬만한 사람들은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를 갖고 있었다.)

미니홈피로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남자1호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OOO OOO'라는 작품에 대해 그 사람이 지인에게 '좋으니 꼭 보라'고 권하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만났을 때 공통의 화젯거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이 애니메이션을 구해서 봤다.

◆종잡을 수 없던 남자1호의 속마음

마침내 다가온 소개팅 당일. 약속장소는 압구정동의 한 카페였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여자가 좀 없어 보일 수 있지. 나는 쫙 빼 입은 모습으로 카페 인근을 한 바퀴 돌며 시간을 소모했다. 약속시간 10분 전. 카페에 들어갔다. 남자1호 같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 일찍 왔나?

아무튼 자리를 잡고 앉기로 했다. 입구 쪽을 주시하며 남자1호를 기다렸다. 문이 열릴 때마다 저 사람인가 싶어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남자1호였다. 늦어서 미안한데,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근처에서 헤매고 있다나. 주차하고 천천히 오시라고 최대한 상냥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10여 분 후, 드디어 남자1호가 카페에 모습을 드러냈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내 앞에 앉았다.

'아이고, 내가 너무 오버했군!' 남자1호를 본 순간, 내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내 차림새가 과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무난한 인상의 남자1호는 면바지에 캐주얼한 재킷 차림이었다. 그러나 나는 평소 잘 신지도 않던 하이힐에, 약간 화려한 느낌의 새틴 블라우스를 입었고, 타이트한 블랙 스커트, 머플러에, 트렌치코트, 그리고 헤어디자이너가 신경 써서 드라이해준 헤어스타일까지 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 선보러 왔어요, 하고 대놓고 광고하는 느낌이었달까. 오 마이 갓….

남자1호는 다시 한 번 늦은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숨을 돌린 그는 대뜸 나한테 몇 번째 미팅이냐고 물었다. '처음인데요'라고 대답한 내가 왠지 초짜라는 생각에 민망한 기분이었다. 이어 그는 내게 결정사에는 언제 가입했느냐, 커플매니저는 잘 대해주느냐 이런 걸 물어보며 결정사 미팅 시스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어라, 다른 사람 만날 때 써먹으라는 거야?' 시종일관 친절하고 예의도 바르게 행동하긴 했지만 그 사람이 내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통 알 수가 없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노라니, 두어 시간이 흘러갔다. 집에 데려다 주겠단다. 아까 얘기할 때 들어보니 집이 우리집하고 반대방향이던데. 그러실 필요 없다고 사양했지만 괜찮다며 태워다 주겠단다. 어, 이거… 혹시 호감의 표시?

그는 주차장에서도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앉을 조수석 쪽 문을 직접 열어주는 게 아닌가. 내가 앉자 문을 닫아주고는 운전석 쪽으로 갔다. 이렇게 황송할 데가 있나. 남자가 차 문을 열어주는 이런 매너는 처음이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대화는 계속 됐다. 얘기를 하다가 취미 얘기가 나왔다. 애니메이션 좋아한다고 하니까 어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느냔다. 오, 예습했던 내용을 써먹을 기회로군! 'OOO OOO'를 재미있게 봤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남자1호는 "아, 그거 괜찮죠" 하고는 별로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이건 뭐지? 관심 있는 상대와 자신의 취향이 같으면 보통 흥미를 보이게 마련인데, 아까의 그 친절과는 다르게 일관성 없는 이 사람의 태도란? 아, 헷갈려.

우리집 근처에서 차를 세운 그는 먼저 내리더니 또다시 내가 앉아있던 조수석 쪽으로 와서 문을 열어줬다. 그는 그런 내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하며 "또 봐요"하고 인사했다. 뭐? 또 보자고? 자기 집과 방향도 완전히 다르던데 집까지 데려다 주더니, 차문을 몸소 열어주고, 또 보자는 인사까지 해? 집으로 걸어가며 나는 계속 혼란스러웠다. 이 사람,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도통 그의 마음이 명확하게 읽히지 않았다.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 속에서 하루가 흘러갔다. 이틀 후, 커플매니저가 내게 알려준 만남 결과는…. '좋은 분 같지만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습니다'였다. 아름답게 포장된 문구지만 이는 '거절'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회원간에 만남이 이뤄지면 두 사람이 계속 만날 의향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커플매니저가 회원에게 바로 이메일로 물어본다. D사의 경우 그에 대한 답변 항목을 객관식으로 제시하고, 회원은 번호를 매겨서 답장을 한다. 마음에 든 강도에 따라 답변이 나뉜다. (1)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2)상대방이 괜찮다면 만나볼 의향이 있습니다 (3)좋은 분 같지만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4)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하는 식이다.

만남 결과에 대해 커플매니저에게 통보할 때는 객관식 번호만 적어 보낼 수도 있고, 만난 정황을 간략하게 쓰기도 한다. 나는 대체로 그날 상황을 간단히 말로 설명해서 보내곤 했다.

아무튼… 나는 '상대방이 괜찮다면 만나볼 의향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던 터였다. 이것은 조건부 수락의 의미다. 상대방이 나를 좋게 생각한다면 나도 만나볼 생각이 있지만, 상대의 생각이 다르다면 굳이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거절당한 것이었다.

곰곰이 그날 상황에 대해 복기에 들어갔다. 외모? 그 문제는 아닐 것이었다. 이미 우리는 상대방의 사진을 본 상태가 아닌가. 남자1호가 나를 아주 별로라고 보는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나도 상대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다소 밋밋한 소개팅이긴 했지만, 만남이 반복되면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자신의 집과 반대방향에 살고 있는 나를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고, 차에 타고 내릴 때면 차문을 직접 열어준 매너, '또 봐요' 라고 했던 인사말…. 이런 호의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그때는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남자1호의 태도는 그저 '결정사에서 선보는 남자의 매너 있는 자세'에 불과했음을. 결정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태도는 결정사 외부 소개팅에서의 태도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도.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이혜경 기자

14년째 경제, 산업, 금융 담당 기자로 일하며 세상을 색다르게 보는 훈련을 하고 있다. 30대 초반에 문득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결혼정보회사 회원에 가입, 매칭 서비스를 1년간 이용했지만 짝을 찾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블로그 '어바웃 어 싱글(About a single)'을 운영하며 같은 처지의 싱글들과 가끔 교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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