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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정보회사 가입 후 첫번째 관문을 넘다


[결혼정보회사 미팅? 그것을 알려주마!](4)

[이혜경기자] 결제를 마쳤지만 넘어야 할 관문은 더 있었다. 상세한 회원 정보를 적어내야 했다.

'어라, 뭐가 이리 많아?' 생년월일, 본관, 고향, 출신학교, 가족관계, 혈액형, 종교, 취미, 직업, 본인 연봉, 자산 규모, 부모님 직업, 형제자매의 직업 등으로 생각보다 다양한 항목을 물었다. 나 자신에 대한 부분만이 아니라 가족이 뭘 하는지를 묻는 것은 예상하지 못해서 좀 당황스러웠다.

소개받고 싶은 상대방에 대한 희망사항 항목도 있었다. 상대방의 연령대, 키, 최종학력, 직업군, 종교 등을 적으라 했다. 탁자 위 종이의 빈칸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쓰다 보니 기분이 좀 묘해졌다. 이런 요소들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그리고 과연 이런 것들로 내가 바라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꼭 삐딱하게만 볼 사안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결혼상대 후보자에게 궁금할 수 있는 정보이긴 하니까. 소개받은 두 남녀가 직접 서로에게 물어보기엔 좀 민망한 내용 아닌가. 그런 부분을 결혼정보회사에서 미리 대신 물어봐 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의아한 부분은 남아 있었다. 성격이나 가치관 등에 대한 것은 조사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업, 연봉, 종교. 물론 중요한 요소지만, 성격과 가치관이 전혀 안 맞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문제일 텐데. 이 부분은 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지?

이 부분을 보완하는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소개글과, 원하는 상대방의 특징에 대해 적은 글을 나중에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앞서 기재를 요구한 서류와 달리 필수사항은 아니었다. 대충 써도 된다고 했다. '대충'이라니, 하아….

신분 확인 절차도 남아 있었다. 본인이 다니는 직장의 재직 여부를 증명하는 재직증명서와 출신학교 졸업증명서를 떼어서 D사에 우편으로 보내라고 했다. 가족관계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나의 호적등본을 D사에서 직접 떼어본다고 했다.

◆가입할 때 적는 신상정보들이 과연 내 짝을 찾아줄까?

나중에 제출해야 하는 것 가운데는 프로필용 사진도 있었다. 사진도 나름의 원칙이 있단다. 증명사진 말고,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 일명 '스냅 사진'이라고 하던가. 그러나 여러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은 곤란하다고. 혼자 찍은 사진 중에 잘 나온 것으로 골라서 몇 장 보내달라고 했다.

참고 삼아 말하면, 내가 한참 후에 활동하게 된 결정사 회원 커뮤니티에서는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한 오프라인 번개가 종종 열리곤 했다.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여자는 예쁘고, 남자는 멋있는 모습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었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뒤늦게 사진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다.

사진찍는 데 솜씨가 있는 회원 두어 명이 카메라를 들고 나오면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최선의 차림새를 하고 풍경이 근사한 공원이나 한강 둔치 등에서 어색해 하면서도 이러저런 포즈를 취하고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렇게 해서 운좋게 좋은 사진이 나오면 다들 자신을 담당하는 커플매니저에게 프로필 사진을 교체해 달라며 이메일에 첨부해 보냈다. 결혼정보회사 회원들이 짝을 찾기 위해 이렇게 '필사적인' 자세로 노력을 기울였다는 얘기다.

내 경우에는 예전 직장의 사진기자 선배가 함께 취재를 다녀오는 길에 회사 근처 공원에서 전문가의 손길을 담아 나름 느낌있게(?) 찍어준 사진이 있어서 그 사진을 사용했다.

아무튼 그날 D사에서 써야 할 것을 다 쓰고, 나중에 따로 제출해야 할 과제물에 대한 공지사항을 듣고 난 후, 나는 짐을 챙겨 일어섰다. 인사를 하고 건물 밖을 나서는데,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피곤이 몰려왔다.

"택시!" 도로변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노을진 한강과 강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들….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을 꺼냈다.

"엄마? 저예요. 저번에 말씀드렸던 결혼정보회사에 오늘 가입했어요." "그래? 잘했네." "가격이 생각보다 좀 세긴 했는데, 어쨌든 최선은 다해 보려구요. 한 1년 열심히 노력해보고, 못 찾으면 혼자 사는 것을 전제로 인생 계획 다시 짜보려고 해요. 집 문제도 그렇고, 도대체가 이 상태로는 투자 계획을 세울 수가 없네." "인연이 닿으면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지.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엄마에게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고 보고하던 내 입에서 뜬금없이 '플랜B'가 튀어나왔다. 인연을 못 만날 경우, 인생 설계를 다시 하겠다고. 인생 설계? 투자 계획?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황당한 얘기가 아니었다.

당시 나는 점점 불어나는 종자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컸다.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스물넷부터 모아온 종자돈이 비효율적으로 방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사회에 나온 나는 알뜰히 저축하며 종자돈을 불려왔다. 여자들은 대개 결혼자금으로 쓰기 위해 이렇게 저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무렵은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어느새 7년째. 저축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불어나 있었다. 친구들이 이십 대 후반에 결혼할 때 쓴다던 결혼자금의 두 배도 넘었다. 일찍 결혼을 했다면 할 필요가 없었을 고민이었을 것이다.

결혼자금이냐, 싱글의 투자 재원이냐. 만일 결혼하지 않고 싱글로 살아가게 된다면 모아둔 돈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는 적절히 투자를 해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의 문제가 방향을 잡고 난 후의 일이었다.

그 무렵 결혼 또는 싱글이라는 삶의 방식 사이에서 방향을 알 수 없어 방황한 것은 내 인생만이 아니었다.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이혜경 기자

14년째 경제, 산업, 금융 담당 기자로 일하며 세상을 색다르게 보는 훈련을 하고 있다. 30대 초반에 문득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결혼정보회사 회원에 가입, 매칭 서비스를 1년간 이용했지만 짝을 찾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블로그 '어바웃 어 싱글(About a single)'을 운영하며 같은 처지의 싱글들과 가끔 교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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