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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소셜 본능의 출발점 '회색노트'


[고전으로 읽는 소셜 미디어-2]

[김익현기자] 로마의 권력 투쟁이 극에 달했던 기원전 51년. '원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변방 시실리 영주로 쫓겨났다.

키케로는 당대 최고 연설가로 훗날 ‘유럽 문명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는 인물. 하지만 당시 그의 최대 관심은 로마 공화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특히 키케로는 변방에 머물고 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동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언제든 군사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올 수도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로마는 인쇄술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 당연히 신문도 없었다. 하지만 키케로는 큰 어려움 없이 로마 정가의 동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광범위하게 유통됐던 편지 덕분이었다.

키케로는 가까운 친구들과 끊임 없이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편지 유통 방식이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 형태로 된 편지들엔 각종 문건들을 베껴 적기도 하고, 누군가의 편지에 의견을 덧붙여 보내기도 했다. 키케로의 연설문 같은 것들은 여러 사람이 공유하기도 했다.

◆꼭꼭 눌러쓴 '손편지' 주고 받던 추억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키케로가 모범을 보인 편지는 문학에선 중요한 소품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비롯한 수 많은 작품들이 애잔한 사연을 담은 편지로 구성돼 있다. 오죽하면 ‘서간문학’이란 장르 구분까지 생겼을까?

본격적인 작품 얘기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시간을 되돌려 보자. 1980년대 이전까지는 편지가 중요한 소통 도구였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가 되면 엄청나게 많은 카드를 주고 받았다.

몇몇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마음을 터놓는 친구와 공동 노트를 만들어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다. 한 친구가 뭔가를 쓴 뒤 넘겨주면, 다른 친구가 자기 얘기를 덧붙이는 식이었다. 이런 노트들은 ‘회색 노트’란 명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언뜻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추억 속 한 장면. 하지만 이 장면 속엔 앞에서 설명했던 인간의 소통 본능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의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불후의 명작 한 편을 만나게 된다.

193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로제 마르텡 뒤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 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 총 8부작으로 구성돼 있는 ‘티보가의 사람들’ 제1부 ‘회색노트’를 접하게 된다.

‘회색노트’는 완고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자크와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프로테스탄트 집안 출신 다니엘 간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완전히 상반된 집안 출신인 둘은 남몰래 우정을 나눈다. 이들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둘이 공유하는 ‘회색노트’다.

◆자크와 다니엘은 '회색노트'로 마음을 주고 받고…

자크가 먼저 편지를 쓴다.

“오, 언제나, 언제나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언제나 우리는 함께 살 수 있게 되고, 함께 여행할 수 있게 될까? (중간 생략) 기다리는 것은 싫다. 되도록 빨리 답장을 다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도 나를 사랑한다면, 네 시까지 회답주기 바란다.” (67쪽)

그럼 다니엘이 자크의 편지 뒤에 이런 답장을 붙여 넣는다.

“내가 비록 다른 하늘 아래 홀로 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 두 영혼을 맺어주는 진실로 유일한 우리의 우정이 나로 하여금 네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알게 하고야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은 때론 마음 속 얘기를, 또 때론 철학적 담론을 나눈다. 그들이 나누는 편지 속엔 그 무렵 학교와 교회가 금지하고 있는 ‘불온사상’(?)도 끼어 있다.

“졸라의 ‘괴멸’을 다 읽었다. 네게 빌려줄 수 있겠다. 아직도 그 감격이 사라지지 않은 채 나의 마음은 떨리고 있다. (중간 생략) ‘베르테르’를 읽기 시작했다. 아, 벗이여, 이것이야말로 모든 책 중의 책이다!” (다니엘)

“주의해. QQ가 고약한 눈초리로 우리를 주시했다. 그 자는 우리가 고귀한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가 살류스티우스를 읽는 동안에 우리가 그 고귀한 생각들을 친구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자크)

자크와 다니엘의 ‘회색노트’는 오래 계속되진 못했다. 학교 교사와 신부에게 발각이 됐기 때문이다. 징계를 당할 위기에 처한 둘은 가출을 하지만 결국 어른들에게 붙잡혀 다시 집에 돌아온다.

둘 중 더 큰 타격을 받는 건 자크였다. 분노한 아버지 티보씨가 자크를 자신이 만든 소년원에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티보가의 사람들' 1부 '회색노트'는 소년원으로 떠나는 자크가 다니엘에게 급하게 써보낸 편지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소셜 미디어의 출발은 '담벼락에 글쓰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에피소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색노트’에 나오는 얘기는 사춘기 시절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통 장면이다. 그 무렵엔 누구나 그렇게 편지를 주고 받고, 또 그렇게 소통을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근 출간된 톰 스탠데이지(Tom Standage)의 ‘‘담벼락에 글쓰기(Writing on the Wall)’란 책을 한번 뒤적여 보자. (‘담벼락에 글쓰기’는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이다. 아쉽게도 아직은 번역서가 나와 있지 않다.)

저자 스탠데이지는 이 책에서 소셜 미디어 2천 년 역사를 조망한다. 그 첫 출발점으로 삼은 게 앞에서 소개한 키케로 사례다. 그는 키케로의 활동을 소개한 뒤 ‘일종의 소셜 미디어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키케로 당시 편지를 이용한 소통 시스템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21세기의 첨단 소셜 미디어 구동 방식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혹자에 따라선 이런 설명이 다소 억지스럽다고 받아들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스탠데이지의 이런 설명과 해석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아니 한 발 더 나가 난 모든 미디어는 ‘소셜 기능’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잘 통하는 누군가와 속내를 털어놓는 것. 또 상대방의 얘기에 자기 의견을 덧붙이고, 때론 반박하기도 하는 것. 따지고 보면 이게 소셜 미디어의 기본 속성이자 인간의 본능이다.

그럼 왜 요즘에 와서야 '소셜 미디어 혁명'이 시작된 것처럼 난리법석을 떠는 걸까? 모바일과 스마트폰 혁명 덕분에 전통적인 인간의 소통 방식에 '속도'와 '거리'가 더해진 때문이다. 이전에는 기껏해야 동네와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던 직접 소통 대상이 이젠 지구 반대쪽까지, 그것도 실시간으로 확대된 것이다.

페이스북 같은 모바일 미디어들이 각광을 받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커버그는 '인간의 본능'과 '첨단 모바일 기술'을 잘 결합해낸 '소셜 전문가'라고 평가해도 될 것 같다.

◆소통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자크와 다니엘은 현실 세계보다는 '회색노트'를 통해 위안을 얻는다. 엄격한 가톨릭 명문가 둘째 아들인 자크는 숨막힐듯한 집안 분위기가 싫다.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다.

반면 다니엘은 자유분방한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의 외도로 붕괴된 집안은 불안정하기만 하다. 게다가 보수적이다 못해 경직된 듯한 학교 분위기도 견디기 힘들다.

'회색노트'는 이런 둘에게 유일한 위안처다. 둘만의 공간. 조금 더 그럴싸하게 표현하면 일종의 '소셜 플랫폼'이다.

물론 '회색노트'는 페쇄된 공간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개방형 SNS보다는 비트윈 같은 폐쇄형 SNS에 더 가깝다. 게다가 '회색노트'와 요즘 소셜 미디어를 지탱하는 기본 기술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양방향, 대화 환경, 그리고 수평적 정보 유통이란 관점에선 놀랄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방의 글을 읽고 답을 하고, 때론 반박하고 때론 자기 의견을 덧붙이기도 하는 것은 요즘 우리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하고 있는 활동과 너무나 흡사하다.

이 소설에서 어른으로 상징되는 기성 권력층들은 자크와 다니엘의 소셜 미디어 활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간주한다. 그래서 '회색노트'를 압수한 뒤 둘을 제재하려고 한다. 소셜 미디어를 아웃사이더들이 불만을 쏟아내는 곳으로 간주하는 요즘 권력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회색노트'가 던지는 교훈…"수평적 소통은 인간의 본능"

유일하게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는 것은 다니엘의 어머니 퐁타넹 부인이다. '바람 난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퐁타넹 부인은 '회색노트'에서 가장 권력과 먼 인물이란 점을 강조하면, 과잉해석을 하는 것일까?

어쨌든 퐁타넹 부인은 자크와 다니엘의 '회색노트'를 잔인하게 씹어대는 교사와 신부의 행태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여러분, 저는 한 줄도 읽지 않겠어요. 그 애의 비밀이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애 모르게 폭로되고, 그 애에게는 변명할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다니요! 전 그 애에게 이런 대우를 받도록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42쪽)

자크와 다니엘. 그들은 '불통'의 시대에 소통을 꿈꾸었던 뛰어난 소셜 미디어 활동가였다. 물론 그들의 짧았던 '소통 노력'은 비참하게 꺾이고 말았다. 한 차례 가출하는 자그마한 일탈 끝에 힘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억압사회에 대해 그들이 던진 메시지는 큰 울림으로 되돌아온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수평적 소통 본능'은 그 누구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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