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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8년]'도둑들'·'광해' 천만 관객 뒤엔 이들이 있었다


[권혜림기자] 2012년, 무려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약 두 달 간격을 두고 1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유례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7월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과 9월 개봉한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그 작품들이다.

두 영화의 폭발적인 흥행 뒤에는 개봉 전부터 영화와 관객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지는 영화 마케팅 전문가들이 있었다. 영화 홍보 마케팅 회사인 퍼스트룩은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를 나란히 관객들에게 소개하며 두 영화의 1천만 관객 돌파에 제대로 힘을 실었다.

지난 10월25일 서울 한남동의 퍼스트룩 사무실에서 이윤정 대표(37)와 강효미 실장(36)을 만났다. 명필름에서 일했던 이윤정 대표는 강효미 실장과 MK픽쳐스에서 처음 만나 햇수로 9년째 함께 해오고 있다. 지난 2005년 함께 마켓 인피니티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2007년부터 퍼스트룩이라는 새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차분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이윤정 대표와 둥글둥글한 성격의 강효미 실장은 서로 정반대의 성격은 아니지만 "고민의 지점이 줄곧 달라 서로 조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다 끈끈한 호흡을 자랑한다.

이 대표가 스물 아홉, 강 실장이 스물 여덟일 때 창업한 퍼스트룩은 이제 한 해에 두 편의 1천만 영화를 내놓을 정도로 굵직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두 회사가 됐다. 이 대표는 "믿기지 않는다"면서도 "만으로 10년 이상 한 눈 팔지 않고 영화 마케팅만 해 왔는데, 그간 쌓인 지식과 지혜, 연륜의 결과가 이렇게 나올 수 있구나 싶어 기쁘다"고 말했다.

-'도둑들'과 '광해'의 1천만 관객 돌파, 소감은?

이윤정 대표(이하 이) "영광이다. 이렇게 한 두 달 사이에 천만을 넘은 두 편의 영화가 나온 적이 있던가.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한 경험이다. 해 본 것과 안 해본 것이 다르듯,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사실 올해 한국 영화 최고 스코어를 보면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제외하면 상위권 대부분이 우리가 홍보한 영화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감성의 영화인 '러브픽션'에 180만 관객이 들었다는 것도 기뻤다.(웃음)"

강효미 실장(이하 강) "사실 천만을 넘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천만을 환상이나 멀리 있는 단어로 느끼지 않고 현실로 경험했다는 것이 소중한 자산이다. 사실 '도둑들'과 '광해' 말고도 '내 아내의 모든 것'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흥행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한 해에 두 편의 1천만 관객 영화가 등장한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좋은 콘텐츠가 많았다. 지난해에 시나리오부터 탄탄한 콘텐츠들이 많았는데 그 영화들이 제작돼 올해 개봉한 셈이다. 과거 영화 산업에 자본이 거대 투입되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리다 내리 깨진 해가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배급·투자사의) 시나리오를 결정하는 팀들에서도 보는 시각을 기른 것 같다. 100만이 든 영화든 1천만이 든 영화든,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데다 기본적인 퀄리티와 완성도가 좋아졌다고 본다."

"상향 평준화됐다는 느낌은 분명 있다. 2007년경 르네상스가 돈에 기반한 부흥이었고 천차만별의 퀄리티가 등장한 것이었다면, 올해는 콘텐츠의 승리였다."

-'도둑들'과 '광해'의 마케팅 포인트는 어떻게 달랐나?

"'도둑들'은 지난해 3월 시작해 올해 7월 개봉까지 1년 반을 매달렸다. 7월에 개봉했지만 천만 돌파 후 마케팅까지 고려하면 계속 일을 한 셈이다. '도둑들'은 감독이 센 영화인데다 배우들을 빵빵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컸다. '광해'는 조금 달랐다. 신나고 즐거운 영화와 좋은 영화가 있다면 '광해'는 후자였다. 그래서 사전 시사 규모를 크게 잡았다. 기대하게 만들다 한 번에 터뜨렸던 '도둑들' 때와는 달랐다."

"'광해'는 '이 정도의 기대감이라면 두 배의 만족도를 전파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케팅 기간도 길게 잡았다. '도둑들'의 경우는 9월까지 끌고 가기보단 첫주에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눌러 승기를 잡고 가는 것에 신경을 썼고.(웃음) 사실 '도둑들'에는 굳이 블록버스터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배우들이 서 있기만 해도 대작에 대한 기대감이 있으니까. 배우들을 한두 명씩 떼어 행사를 하기보다 모두 모인 상태에서 스케일이 큰 행사를 주로 했다. 모여 있을 때 시너지가 나는 팀이었다."

"그 배우들을 다 모으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작은 이벤트를 할 이유도 없었다. 크게 크게 한 번씩 했을 때 그런 압도적인(레드카펫 행사 등의) 사이즈가 나왔다. 시사회 역시 전관 시사만 진행했다. 한 번에 2천, 3천 명의 입소문이 나는 거다. 그렇지만 홍보 과정에서 제작비의 사이즈를 보여줄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100억 제작비를 강조한 적도 없었고. '광해'는 팩션 사극이라는 점부터 느낌이 다른 영화였지만 최근 성공한 사극 콘텐츠가 많아서 독보적 느낌을 주기는 어려웠다. 스타성보다는 연기파 배우들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데 신경 썼다. 영화의 메시지 자체도 좋았다. 즐기고 환호하는 영화보단 생각하게 만드는, 따뜻한 영화였다."

"'도둑들'과 '광해'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작품이 좋다'는 확신이었다."

"'광해' 에 대해선 포스터나 예고편이 영화보다 어둡다는 우려도 있었다. '코미디를 왜 팔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거기서 흔들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광해'를 코미디로 팔았다면 관객들은 오히려 영화를 무겁다고 느꼈을 거다. 웰메이드 영화임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최근 지속되고 있는 영화계 멀티캐스팅 경향은 계속될까?

"한동안 멀티캐스팅 흥행을 노리는 사람들은 계속 있겠지만 올해가 배우와 멀티캐스팅의 해라면 내년은 감독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해외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한국 감독도 있고, 누군가는 해외 배우들과 한국 자본으로 영화를 만든다. 누군가는 풀3D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감독들의 새로운 시도가 나올 것이라 본다. 국내외 자본이 손을 잡는 경우도 그렇고, 풀3D에 도전하는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도 새로운 시도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할리우드 배우들로 찍으니 궁금해지고. 감독들이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올해가 내수 시장을 확대한 해였다면 내년은 해외에서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말로만 합작을 시도하다 깨진 영화들이 많지 않나. 그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완해서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않을까 한다. '설국열차'는 우리가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의 배급 방식에 시선이 쏠릴 거다. 박찬욱 감독이 해외로 가서 찍은 '스토커'가 국내외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마찬가지다. 내년은 국내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이슈나 시스템을 검증하면서 비전을 볼 수 있는 해가 아닌가 싶다. 3D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지아이조2'도 3D 작업을 이유로 개봉을 미뤘다. 중국은 내년쯤이면 80~90%의 스크린이 3D로 바뀐다더라. 광풍 수준이다."

"그런 중국에 괜찮은 3D 콘텐츠를 만들어 수출할 수 있다면 더 좋을거다."

-앞서 언급한대로 올해 홍보한 영화들이 대체로 잘 됐다. 시나리오를 고르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잘될 것들만 고르며 일하지는 않는다. 공포 영화 빼고는 장르 편식도 없다. 개성 있는 영화가 좋다. 없었던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알려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재밌는 거다. 기준이 철저하진 않지만 '러브픽션'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읽고 로맨틱 코미디이긴 한데 너무 웃기고 재밌다는 면에서 기존과 다른 지점을 찾았다. '내 아내의 모든 것'도 자칫 잘못하면 비호감이 될 수 있는 영화였지만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회사와 정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좀… 우리에겐 공포 영화가 마케팅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무조건 무서워야 하니까.(웃음) 그 외에 돈 벌려고 만든 게 너무 티 나는 영화도 피하고 싶다. 물론 우린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목표지만, 영화가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 면에서 단순히 블록버스터라고 해서 홍보를 맡지는 않는다. 우리 회사를 키운 영화들은 '완득이'나 '추격자' 같은 작품들이다."

"'7급 공무원' 같은 독특한 코미디 영화도 좋다. 기대작이 아니었는데 호평을 얻을 때 희열을 느낀다. 팔 게 정해져 있는 영화라면, 그 해 제일 잘 될 것 같은 영화여도 별로더라. 물론 '도둑들'의 경우는 성공 가능성도 무척 컸지만 이제까지 없었던 규모와 캐스팅 범위가 흥미로워 선택했다."

"'완득이'는 시나리오도 받기 전 김윤석과 유아인의 조합이 신선하고 새로워 궁금하기부터했다. 저 둘이 만나서 어떤 연기를 할지, 시나리오를 보니 정말 재밌었다. 전형적인 기대작이 아니라 보람있고 신나는, 도전 의식이 생기는 그런 영화들이 우리를 성장시켰다."

-영화 마케팅 일을 하며 종종 부딪히는 벽이 있을 것 같다.

"'대행사'라는 말이 싫다. 사전적 의미로 나쁜 말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느낌이 그렇다. 우리 일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마케팅 자체보다 우리를 대행사라는 테두리에 가두려는 경우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담당하는 영화에 대한 책임감과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가는 건데, 우리를 '을'이나 '대행사'로만 대하면 재미 없다.(웃음)"

"우리는 이 일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4천, 5천만 국민들을 상대로 영화를 알리는 일에는 책임감과 전문적 소양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전문직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포스터도 만들고 영상을 보며 예고편을 기획하기도 한다. 갖춰야 할 능력이 많은 직업이다. 그래서 잘 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다.

"지금 신입사원을 뽑고 있는데,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 말고 진지함과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웃음)"

"영화가 잘 됐으니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것만 보고 오는 사람들에겐 '작지만 소중한 영화들을 맡는 경우도 많다'고 말해주고 싶다."

-홍보 마케팅 회사로 탄탄한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제작에 뛰어들 생각은 없나?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할 수도 있다. (제작에 대해) 닫아두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젊으니까,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홍보 마케팅을 하다 보니 알겠더라. 영화는 '해야지'라는 생각 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작품을 할 때 관객과 소통도 잘 된다. 정말 영화화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웃음) 제작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영화들이 잘 되더라."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조성우 기자 xconfind@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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