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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소프트맥스 CEO] (2) 돈보다, 시장보다 더 큰 희망은 사람


 

지난 98년 소프트맥스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5년 내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 제작사로 거듭난다는 목표 아래 매년 매출 2배 이상 증대, 이익중 일정 부분에 대한 인센티브 실시 등을 골자로 한 단계별 사업계획이었다.

창세기전으로 인한 매출 증대 추이를 볼 때 게임 관련 부가 사업도 가능하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또한 창세기전1을 시작으로 일본과 대만 수출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해 어느 정도 개발기간이나 자금을 투입할 경우 해외시장으로 본격적인 수출도 가능하리라고 판단했다.

당시의 4억원이면 소프트맥스 1년 총 운영비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부도 난 회사를 방문했다. 그러나 그 회사 일은 아예 깨끗이 잊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날아가버린 4억원보다 믿었던 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나 버린 것이 내게는 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잠깐 나의 창업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지난 93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만 중소기업으로 옮겼다. 그 회사에서 일본에 OEM 형태로 소프트웨어 특히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납품하던 부서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몇 번인가 일본 출장을 통해 게임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또 새롭게 접하게 된 업무에 한참 재미를 붙여나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부도를 내고 말았다. 그때의 경험은 당시로서는 차마 상상 못했던 일이었다.

사주와 직원들은 서로 욕지거리하며 다퉜다. 또 채권자들이란 ... 지금도 그렇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대부분 연령대가 젊은 층이다. 그중 나이가 가장 많고 사회경험도 있던 나는 젊은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고민 끝에 내가 담당하고 있던 직원들에게는 우선 월급을 해결해줬다.

물론, 사장이 밀린 월급은 해결 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처음엔 단순하게 잠시 빌려 준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사장은 어느날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소프트맥스는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요즈음은 벤처 붐이 예전보다 시들해졌다. 사회 여기저기에서 벤처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상당히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인다. 내가 창업할 때는 '벤처'라는 단어가 흔치 않았다. 게임사업을 하다보니 벤처에 분류돼, 현재는 각종 벤처사업중에서도 가장 경쟁력있는 분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든, 벤처든 나를 포함해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가슴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다른 사람의 돈을 소중히 생각하자는 것이다.

부도를 낸 위의 두 회사의 사장은 물론 내가 모르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무리한 차입을 했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사업이라는 것이 모두 한 번에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소프트맥스 5개년 사업 계획은 예기치 않은 '부도사건'으로 첫해부터 우리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는 유통회사의 부도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됐다. '위기는 고통을 수반하지만 항상 새로운 기회도 수반한다'는 것이다.

부도로 손실을 입게 된 4억원은 그 회사를 다녀온 후 머릿 속에서 싹 지우기로 했다. 그러자 회사의 단기 운영자금이 당장 문제가 됐다. 다행히 정보통신부의 정보화촉진기금 융자 지원을 받아 운영자금은 해결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새로운 유통 업체를 물색했다. 단기 운영 자금이 해결되고 나니 좀 더 장기적인 유통전략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기존의 로열티 판매 전략을 포기했다. 우리가 직접 마케팅하여 시장에 판매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다소간의 자금 부담은 있었지만, 오히려 시장에서는 중간 마진의 폭이 줄어들었다고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자금이나 시장보다도 나에게 희망을 심어준 것은 직원들이었다. 내심 유통회사의 부도로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단결된 힘을 보여줬다. 모두가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게임을 개발, 98년 12월 '템페스트'를 출시했다. 소프트맥스는 매년 12월에 게임을 출시한다고 많은 고객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잘 따지고 보면 창세기전1이 95년 12월, 창세기전2가 96년 12월 그리고 서풍의 광시곡이 98년 3월, 템페스트가 98년 12월에 출시됐다. 98년에는 한 해에 2편의 게임이 출시됐던 것이다. 나는 말로 직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데 비교적 인색한 편이다.

항상 내가 생각하는 감사를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하다보니 그 전달이 직원들에게는 조금 답답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면을 통해 나는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실 1년에 게임을 2편이나, 그것도 RPG게임을 제작한다는 것은 보통의 회사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에 따르는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마그타 카르타'의 총 디렉터를 하고 있는 최연규 실장과 얼마 전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런 얘기를 들었다. "디렉터 입장에서는 회사, 개발자, 게임을 항상 생각한다. 가장 좋은 것은 이 세가지가 잘 어우러져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템페스트는 회사가 우선인 게임이었을 것이다. 디렉터의 입장에서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나는 안다.

템페스트는 그런 우리의 고통을 씻어주듯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다. 판매방법을 바꿈으로써 회사의 매출과 수익구조는 한층 개선됐다.

99년 유통자회사 디지털에이지 설립, 2000년 일본 현지법인 설립, 미래에셋에서 투자 유치, 2001년 코스닥 등록, 회사는 외형상으로는 착실하게 성장해올 수 있었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게임 개발사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우리는 굳건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성장보다 더욱 중요한 성장의 힘이 있다. 진정한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회사와 함께 성장하며 소프트맥스에 포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업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스텝들의 경우, 그 경험치라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요즈음 나는 새로운 계획에 밤잠을 설치곤 한다. 현재까지의 소프트맥스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비전을 수립하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조직이나 여러 가지 주변환경이 우리가 예측한 것과 일치하는 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많은 새로운 전문가들을 조직에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소프트맥스에 대해서 보수적인 조직이라고 얘기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 어떻게 보면 다른 회사들보다 그 과정이, 준비기간이 다소 길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준비기간이 길었던 만큼 시행착오의 기간도 줄어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한 준비의 기간이 길었던 것이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진행할 다양한 제휴사업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5개년 계획에서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부분을 시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온라인 게임 시장이었다. 온라인 게임 시장이 이렇게 성장하리라고는 솔직히 예측하지 못했다. 그 원인중 하나는 우리는 일본 시장을 벤치 마킹하고 일본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 99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4LEAF 개발에 착수, 다음 세대의 온라인 게임 시장을 위해 준비해 왔다. 또한 세계 게임 시장으로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마그나 카르타를 준비했다. 온라인 게임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해 넥슨과도 제휴했다. 모바일 게임 분야 진출을 위해 또 다른 제휴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해야 일들은 우리 앞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 모두가 성공적으로 이 일들을 해낼수 있다는 것을...왜냐하면, 우리는 준비기간이 길었고, 그 기간이 길었던 만큼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정영희 소프트맥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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