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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의 바이오 세상]사이버마약과 플라세보효과


듣는 것만으로도 마약을 복용한 것처럼 환각 효과를 낸다고 하여 사이버 마약으로 유해성 논란까지 일으켰던 ‘아이도저 (i-Doser)’가 최근 국내에도 상륙,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주파수 영역별로 분류된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뇌파의 움직임이 조절되어 일시적인 환각 효과가 나타난다고 해서 유명세를 탄 아이도저가 인터넷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UCC 사이트에는 사실 여부야 어떻든 간에 이를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도저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는 알파파(7∼13㎐)와 지각과 꿈의 경계상태로 여겨지는 세타파(4∼8㎐), 긴장과 흥분상태를 나타내는 베타파(14∼30㎐) 등 각각의 음역별의 주파수 특성을 이용해 사실상 환각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원리로 해외에서 만들어진 음원 파일을 말한다.

접속이 폭주하고 있는 해외 아이도저 사이트에는 우울, 처방, 정화, 마약, 진정, 진통, 성적흥분, 최면, 근육증강, 자극성 등 총 10가지의 항목으로 나뉜 약 70여 개의 음원이 MP3 파일형태로 제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가지의 항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마리화나, 헤로인, 코카인, 환각 유발제 등 이름만으로도 섬찟한 마약류 29가지의 메뉴와 자각몽, 수면유도, 유체이탈 등 수면 장애를 조절하는 메뉴와 진통제, 각성제, 항우울제, 불안방지 등 마치 정신병원에서 볼 수 있음직한 용어들로 이루어진 치료용 메뉴로 나뉘어진다. 그밖에 남성미 증강, 명상과 함께 오르가즘 촉진, 조루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8가지 종류의 성인용 음원 메뉴도 구성되어 있다.

올려져 있는 음원 파일들의 재생시간은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45분까지 다양한데 대부분 평균 20분 정도의 길이로 만들어져 있고 평균 3달러에 해당 음원 파일을 낱개 판매하고 있는데 20달러 정도에 판매되는 테스트 팩과 60달러에 이르는 패키지 팩 등 다양한 선택범위 내에서 음원 파일을 묶음 판매하고 있다.

그 중에는 약 200달러나 하는 비싼 음원도 있는데 30분 동안 하늘의 신성함과 우주를 맛보게 해준다는 신의 손(Hand of God)과 지옥의 경험을 의미하는 황천문(Gate of Hades) 등의 이름을 가진 것도 있다.

국내에서도 아이도저를 들을 수 있는 사이트가 잠시 개설됐었지만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다. 이 사이트는 아이도저의 공식 한국어 사이트는 아닌 듯한데 잠시나마 음원 파일이 무료로 제공되었던 바람에 국내 포탈사이트를 통하여 아이도저의 오리지널 음원 파일과 짝퉁 파일이 섞여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사이버 마약인 아이도저의 관련 동영상을 들여다 보면 외국에서 시작된 탓에 대부분의 UCC 등장인물은 외국인인데 아이도저를 들은 뒤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아이도저가 영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실제로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도 하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도 손쉽게 음원 파일을 구할 수 있어서인지, 아니면 단순 모방인지는 몰라도 아이도저 사용후기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한 네티즌은 아이도저를 들어보니 실제로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고 기분전환 효과는 있지만 듣고 나서 머리가 아팠다라는 나름대로의 체험을 올려 놓기도 하였다. 반면 또 다른 네티즌은 "효과가 없는 듯싶더니 나중에 발끝에서 한기가 시원하게 올라오면서 잠이 확 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 후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국내의 한 정신과 의사는 언론을 통하여 “사이버 마약으로 효과를 봤다고 느껴졌다면 이는 플라세보효과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평하였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의 경우, 손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마약을 복용해보고 환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사이버 마약을 듣는 것만으로도 환각상태에 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마약을 접해보지 못하였지만 마치 마약과 같은 환각 상태를 기대하고 아이도저를 듣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환각 상태에 빠졌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위약 (僞藥)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플라세보 (Placebo)란 설탕이나 모조 알약처럼 아무런 약학적 효능을 갖지 않는 것으로 특정한 유효 성분이 들어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환자에게 투여하는 약을 말한다.

새로운 신약 개발 과정에서 후보물질의 효능을 검증할 때는 일반적으로 임상실험을 통하여 행하여 지는데 약물의 효과가 정신력에 의하여서도 좌우되기 때문에 실제 약물과 모양, 크기, 냄새, 맛이 똑같지만 주요성분만 넣지 않은 위약을 만들어 대조군으로 사용한다.

임상실험에 참여하는 피실험자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진짜인지 플라세보인지 알 수가 없고 복용을 지도하는 의사나 간호사들도 알 수 없도록 한다. 그래서 투여자나 피투여자나 모두 모르게 임상실험을 하는 방법을 이중맹검법 (Double Blind Test)이라고 한다.

플라세보효과가 일어나는 원인은 아직 논쟁거리이지만 약리학적인 효과라기보다는 심리적인 효과에 기인한다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자신이 먹은 약이 분명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리라는 신념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밤중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들에게 소화제를 주면서 새로 발매된 부작용이 없는 수면제라고 주면 그 소화제를 먹은 환자는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이내 편히 잠든 경우는 플라세보효과의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플라세보효과와 반대로 부작용이 기대되는 경우를 노세보 (Nocebo)효과라고 한다. 노세보라는 말은 라틴어로 ‘내 몸에 해롭다’라는 의미인데 모조 알약을 복용한 환자들이 가끔 불안이나 우울증 같은 부작용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치료의 역효과에 대한 환자의 선입견이 개입하여 또 다른 조건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한 실험 보고에 따르면 자기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맹신하는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심장질환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거의 네 배나 높았다고 한다.

또 흥미로운 노세보효과의 한 예는 옛 소련시절에 철도국 직원 한 사람이 냉동차 속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 문이 닫혀 갇히게 된 사건을 들 수 있겠다. 안에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 문 때문에 직원은 갇혀 있는 동안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차가운 냉동차의 벽에 죽음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몸이 차가워 온다. 그래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차츰 몸이 얼어 붙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정신까지도 몽롱해진다. 아! 이 순간이 나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몇 시간 후 다른 직원 한 사람의 도움으로 냉동차의 문이 열렸을 때는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냉동차의 냉동조절장치는 고장이 나서 실내 온도가 무려 섭씨 13도였고 산소도 충분히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사 (凍死)하고 만 것이다.

플라세보효과든 노세보효과든 위약은 우리를 종종 윤리적 딜레마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런 상황은 주로 환자들에게 가짜 약을 진짜 약인 양 속임으로써 실제로는 그들의 치료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의사들에 의하여 발생하곤 한다. 만일 환자들에게 노세보효과에 의한 심각한 부작용이라도 발생한다면 뜨거운 논란 속에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노세보효과에 대한 연구가 극히 드문 것은 주로 윤리적인 이유 때문인데 의사가 건강한 사람을 병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념이 앞서기 때문이다.

현재 법률상 ‘마약’으로 규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도저가 젊은 청소년들 사이에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순간 느꼈던 감정이 환각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실제 마약복용을 통한 직접경험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기우가 앞서며 실제 정부의 청소년 보호와 연관된 관계부처에서 아이도저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아이도저를 듣고서도 흥분은 둘째치고 아무런 감정 기복조차 없었고 오히려 뜨거운 커피 한잔과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의 선율에 뇌에서 알파파가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확실히 이젠 기성세대인가 보다.

/정성욱 인큐비아 대표 column_sungoo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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