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차승희 펜타비전 사장


안녕하세요,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코너입니다. 일본에서 대박을 터트린 온라인 롤플레잉게임 '붉은보석'으로 유명한 남택원 엘엔케이로직코리아 사장의 창업스토리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남 사장 역시 '모아니면 도' 식인 게임사업의 엄청난 개발 리스크를 극복하고 성공반열에 오른 모험기업가중 한명이라 평가할수 있을 듯합니다.

남 사장이 추천한 128번째 릴레이인터뷰 주인공은 음악게임 '디제이맥스'로 유명한 펜타비전 차승희 사장 입니다.

"게임개발 1세대 CEO 입니다. 음악게임이라는 독특한 분야에서 글로벌 무대에 뛰어든 진정한 모험기업가입니다."

펜타비전 차승희(37) 사장의 음악게임사업, 그리고 1세대 개발자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그의 게임사업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온라인게임이 등장하기전, 한 시절 풍미했던 '아케이드게임.' 흔히 오락실이라고 하는 게임기 업소에서 즐기는 전자오락게임이 바로 아케이드게임이다. 초보자도 누구나 쉽게 할수 있고 민첩성을 요구하는 슈팅, 보드, 액션, 격투(대전), 스포츠, 퍼즐 등 이제는 추억의 게임으로 기억된다.

스타크래프트,리니지 같은 온라인게임이 등장한 이후 빠르게 퇴조하고 있는 아케이드게임은 이제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아케이드게임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것은 당연한 시대적 흐름인 셈이다.

전국적으로 3만개에 달하던 오락실은 온라인게임의 등장과 바다이야기 게임이 철퇴를 맞으면서, 이제 불과 800여개가 남아있을 정도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렇듯 대표적 사양산업인 아케이드게임, 급기야 오락기 사업에 까지 뛰어들어, 연간 150억원대가 넘는 매출을 바라보는 아케이드게임 및 오락기 전문벤처기업이 등장, 게임산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것도 2006년에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사양산업에서 노다지를 캐는 복고풍 게임전문업체가 등장한 것이다. 때 아닌 복고풍 게임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아케이드게임의 절대강자' 펜타비전이다.

펜타비전은 이미 사양산업으로 다 끝난 시장에,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케이드게임과 오락기 사업에만 주력, 틈새시장을 주도하는 게임산업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차승희 대표는 전형적인 개발자의 모습 그대로다.그는 매우 차분한 스타일이다.

차승희는 대학시절부터 그래픽프로그래머로 활동해온 유명 개발자출신.어셈블리 언어로 게임을 개발했던 그는 10년넘게 게임분야에만 몸담고 있는 국내 1세대 게임개발자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게임시장과 산업흐름에 대한 그의 감각은 매우 해박하며, 특히 전세계 아케이드게임시장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전문가의 포스를 느끼게할만큼 돋보인다.

차 사장은 매우 온화한 성격에 부드러운 스타일이다. 그리 길지않은 5년여의 사업기간이지만, 숱한 경험을 한 탓인지, 매우 노련한 경영수완을 갖추고 있다.

조직관리와 성과관리 등 펜타비전은 게임산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릴만큼 매우 타이트한 개발일정과 성과관리로 정평이 나있다.

펜타비전은 패키지게임 '디제이맥스 포터블' 시리즈와 아케이드게임, 오락기를 전문개발, 올해 100억원, 내년에 150억원대 매출을 바라보는 중견 게임개발사다. 2006년 네오위즈에 흡수합병돼 지금은 네오위즈 자회사다.

◆ PC통신에서 날리던 그래픽프로그래머

차승희는 이미 대학시절,게임개발용 그래픽프로그램, 즉 그림을 그릴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할 정도로 이미 될성부른 '프로그래머'였다. PC통신에 무료 공개한 그의 프로그램은 늘 다운로드 상위권을 다툴만큼 인기작이었다.

"외국 프로그램은 있는데, 국산 제품이 없더라구요. 그림을 그리는데 한글입력조차 할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 스스로 필요해서 개발했죠."

그는 대학시절 그래픽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한 책을 출판, 짭짤하게 돈을 벌기도 했다. 물론 돈벌 생각보단,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모든 사람들이 다 무료로 이용하도록 하고싶은 순수한 개발자로서의 생각에 PC통신 무료 공개, 출판 등에 나섰다.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차승희는 이미 대학생 시절부터 매우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젊은이였다.

당시 하이텔이 프로그램다운로드 건수가 많은 개발자 300여명을 초청해 개최한 '제 1회 아마추어 프로그래머간담회'에 초청될 정도로, 차승희는 PC통신시절 이미 전문가수준의 날리던 개발자였던 셈이다.

"당시 모임에서 안철수 현 KAIST교수가 바로 옆자리에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 교수는 당시에도 워낙 지명도가 있어 금새 알아봤죠. 모두 꽤째째해 멀뚱멀뚱 앉아있는 전형적인 개발자 모습들이었죠. 하지만 개발에 관한한 열정만큼은 대단했죠."

차승희는 애당초 취직생각은 눈코만큼도 없었다. 뭔가 독립적으로 하고 싶었고, 그건 당연히 게임이었다. 1998년 대학졸업후 곧바로 게임사업에 뛰어들었지만,보기좋게 실패한다.대학을 갓 졸업한 그에겐 어쩜 당연한 결과였다.

2000년 어뮤즈월드란 아케이드게임 전문개발사에 흡수된다. 29살의 나이에 연구소장을 맡았다. 이때의 아케이드게임 개발경혐은 4년뒤 그가 창업하면서 아케이드게임에 눈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오락실용에 들어가는 아케이드게임개발에 주력했다. 건반이 떨어지면 누르는 일종의 음악게임인 '이지투디제이'란 게임을 개발, 출시했다.

당시 어뮤즈월드는 기판을 공급하거나, 오락기케이스 전체를 공급하는 두가지 형태로 영업했다. 2001년, 2002년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엄청나게 돈을 벌었다.

회사는 여세를 몰아 인형뽑기, 골프기계 등 다양한 오락기개발에 나섰고, 직원도 200명을 넘어설만큼 확장에 몰두했다. 하지만 2년간 실패를 거듭하자, 회사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2003년 8월 퇴사했다. 회사가 망해 어쩔수 없었다. 차승희와 동료 5명은 몇 개월간의 고민끝에 "회사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2004년 2월, 강남역 인근에 10평도 채안되는 자그만 오피스텔을 얻었다. 이때부터 차승희의 기업가로서의 화려한 변신이 시작된다.

◆ 준비된 CEO, 차승희의 도전

신출내기 CEO 차승희는 5명의 멤버가 가장 잘할수 있는 음악게임을 사업아이템으로 정했다. 당연히 온라인 게임을 개발키로 마음먹었다.

음악에 맞춰 연주하고,점수가 올라가는 음악온라인게임, '디제이맥스'였다. 종전에 개발했던 아케이드게임 '이지투디제이'를 온라인버전으로 개발한 것이다.

사업 시작한 지 6개월만에 개발을 완료하고 그해 8월 서비스를 오픈했다. CJ인터넷과 퍼블리싱계약을 맺었다. 자본금 5천만원으로 시작한 그들에겐 상용서비스는 하루가 급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 너무 서두른게 화근이었다.

서비스를 오픈하자마자 동접자수가 5천명을 넘어서는등 초반 돌풍을 일으켰지만, 서비스개시 1개월만에 유저들이 급속도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제공하는 노래가 10여곡에 불과,유저들이 한 달 정도 이용해 본 후,더 이상 할게 없고, 재미가 없자, 너도나도 밀물처럼 빠져나갔던 것.

동접자수 5천명을 넘어섰던 초반 돌풍은 한달만에 동접자수가 1천여명대로 쭉 빠지면서 대박의 꿈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콘텐츠가 부족한 상태에서 오픈한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첫번째 게임이 실패로 끝나면서 차승희의 CEO로서의 고민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통장잔고가 바닥나자, 돈 구하러 다닐수 밖에 없었다.2005년 6월, CJ인터넷으로부터 5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한다. 숨통을 트이는 단비였다.

직원을 충원, 곧바로 10여곡에 불과한 노래 건수를 대폭 늘리는 작업에 돌입했다. 부족했던 콘텐츠만 보완하면 다시금 올라설 것으로 확신했다. 그해 하반기, 드디어 노래를 60여곡으로 늘린후 유료화를 개시했다.

하지만, 동접자 추이가 전혀 늘지 않는게 아닌가? 한번 돌아선 유저는 이후,아무리 업그레이드하고, 콘텐츠를 늘려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절감했다.

자금 압박과 첫 작품의 실패. 차승희는 격변의 시기인 2005년 9월, 전격적으로 네오위즈에 회사를 합병하는 운좋은 딜을 성사시킨다.

펜타비전 개발능력을 높이 평가한 네오위즈에 지분을 넘겼다. 네오위즈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펜타비전은 오히려 게임전문업체로서 잠재력을 서서히 발휘하기 시작한다.

차승희는 네오위즈와의 합병을 통해 2008년,오락기 사업에 본격 진출하는 결정적 모티브를 잡는다.합병과 복고풍 게임사업은 이렇게 급박하게 이어졌다.

◆ 놀라운 발상의 전환, 게임업계의 원더걸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성공을 확신했지만, 보기좋게 참패한 차승희는 장고를 거듭한다. 첫작품 온라인게임 '디제이맥스'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온라인게임 특성상, 기존 고객 때문에 곧바로 서비스를 중단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매달 계속되는 적자와 바닥난 통장잔고.5억원을 차입하고, 이어 네오위즈에 지분을 매각하기까지, 차승희 역시 창업후 3년간은 '자금과의 전쟁'으로 숨가쁘게 달렸다.

오랜 고민끝에 차승희는 놀라운 모험을 결행한다. 그는 온라인게임이 대세를 이루던 2005년, 패키지게임, 즉 아케이드게임쪽으로 회귀하는 엄청난 결단을 내린다.

이른바 CD형태로 제작된 패키지게임개발을 선언한 것.그야말로 흐름을 역행하는 믿기 어려운 결단이었다.이미 게임산업은 오락실의 아케이드게임, PC기반 패키지게임이 급속도로 사양길로 접어든 상태였고, 게임개발사와 유저, 유통사 모두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같은 온라인게임에 푹빠져있는 상황이었다.

주위 시선은 "이 무슨 미친 짓이란 말인가?" 그 자체였다.

온라인게임이 시장을 휩쓸고 있는 판에, CD로 된 패키지게임개발에 뛰어든다는 것은 게임산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시장을 역행하는 '넌센스,' 속된 표현으로 '정신나간' 일이었다.

차승희는 퇴조하고 있는 대표적 사양산업, 패키지게임시장에 그렇게 뛰어들었다.그것은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었고, CEO 차승희의 사업가적 잠재력을 엿볼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음악게임을 하다보니, 음악게임쪽은 완전히 마니아 시장이라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그렇다면 마니아층은 분명 있고,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가면 분명 승산이 있을 걸로 확신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디제이맥스' 게임을 포터블화, 아케이드게임으로 만들자는 것. 소니 PSP 게임기에 들어가는 포터블형태로 개발하자는 개념이었다. 즉 바로 CD패키지였다.

2005년 12월, '디제이맥스 포터블1'을 출시했다. 놀랍게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그의 모험은 예상을 깨고,무려 7만개가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전혀 예상치 못한 성공이었다.

당시 패키지게임이 대충 2천개 정도 나가던 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할수 있다. 차입금 상환은 물론 온라인사업 적자를 메울수 있었다. 차승희는 무릎을 쳤다. "아케이드게임 시장에 틈새시장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2005, 2006년이면, 유저들은 모두 온라인 네트워크게임으로 돌아섰고, 유통사조차도 "아직도 패키지게임을 하세요?"라며 불쌍한 시선을 보내던 판에 펜타비전의 패키지게임사업 진출은 그야말로 선뜻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사업행보일수 밖에 없었다.

여세를 몰아 2007년 3월 '포터블 2'를 출시했다. 이 역시 8만개가 팔려나갈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디제이맥스 포터블 시리즈가 잇따라 히트를 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포터블(PSP)에서 할만한 게임이 별로 없었던 것. 이 때문에 PSP는 음악이나 영상, TV를 수신하는 멀티미디어기기처럼 사용돼왔다.

PSP유저들이 콘텐츠가 없어 식상해하고 있던 차에 등장한 음악게임 '디제이맥스 포터블시리즈'는 그야말로 따분함을 한방에 해결해준 '인기작'이었다. 음악도 듣고 게임도 즐길수 있으니, PSP유저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 거센 복고바람, 오락기의 히트예감

지난 11월 20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500평 규모의 오락실 내부에는 내방객들이 아케이드게임을 즐기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며칠후인 11월 30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한 오락실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다. 다름아닌 한 오락기앞에서 줄을 장사진처럼 치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길게 줄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펜타비전이 현지 설치한 '디제이맥스 테크니카'란 오락기 때문이었다.

'테크니카'는 22인치 터치스크린에, 32인치 비디오스크린, 소니스피커, 세련된 LED라이트까지 갖춘데다, 인터넷도 가능한 네트워크기능까지 갖춘 오락기다.

지난 11월말, 디제이맥스 테크니카 오락기를 처음 선보인 중국, 일본의 오락실 관계자들은 고객들이 미어터지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1.5달러, 원화로 2천, 3천원을 넣으면, 대략 6분정도 음악게임을 할수 있는 이 오락기는 현존 최고의 최첨단 기능을 앞세워 중국 일본, 미국 현지 게임마니아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사양산업임을 뻔히 알면서도 오락기 사업에 뛰어든 차승희의 장점은 철저히 준비된 승부수였다.

펜타비전은 2008년초, 30억원을 들여 오락기 개발에 착수한 끝에 지난 10월 신제품을 출시했다. "물론 전체적으로 아케이드게임은 사양산업이지만 아직도 규모가 어마어마 합니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은 커지고 있습니다.문제는 전세계 오락실에서 통하는 게임이 없다는 점입니다. 디제이맥스가 바로 글로벌 오락실에 적합한 게임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의 오락기 사업진출은 디제이맥스를 탑재한 오락기로 글로벌 아케이드게임시장을 휩쓸겠다는 다부진 청사진을 담고있다.

"사실 온라인게임은 세계 게임시장의 5%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전체 게임시장의 50% 정도가 아케이드, 콘솔게임 시장입니다. 시장은 무궁무진합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달부터 매출이 발생, 올 12월에만 대략 45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릴 것이 확실시 된다. 내년부터 중국, 일본, 미국 중심으로 대략 연간 100억원대의 수출은 무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철저히 현지화했죠. 음악은 물론 오락기 인터페이스, 언어 등을 현지화하는 동시에 인터넷으로 연결된 오락기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랭킹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이 목표다. 그는 국내의 경우, 온통 온라인게임 일색이지만, 글로벌 아케이드게임시장에서의 성공을 자신한다.

"온라인게임에 몰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정 동접자수만 확보되면 게임 하나로 몇 년간은 수백억원대의 고정매출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젠 100억원대가 넘는 개발비를 투입한 온라인게임들이 한해 100개가 넘게 쏟아지죠. 하지만 대박은 2, 3년에 한 두개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완전 블랙홀이죠."

그는 최근들어 온라인게임의 성공가능성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진단한다. "이젠 기존 게임유저들을 빼앗아오는 일이 정말 힘듭니다. 진짜 획기적인 게임을 내놓기 전에는 기존 유저들은 끔쩍도 안합니다. 대박게임이 왜 2, 3년에 한두건에 불과하겠어요?"

반면 전세계 게임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콘솔, 아케이드게임시장의 신규 수요창출은 매우 용이하다고 진단한다.

"온라인게임은 유저들의 PC사양이 천차만별, 게임속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발이 어려운 반면, 오락기를 이용하는 아케이드게임은 게임속도가 똑같기 때문에 게임 만들기가 매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락실 오락기인 '테크니카'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이유는 과연 뭘까?

"터치스크린에 대형 화면, 세련된 LED라이트 등을 갖춘 오락기를 통해 오락기임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이미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반응이 워낙 좋아 현지 유통사에서도 깜짝 놀라는 분위기입니다."

국내 아케이드게임용 오락기 수출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에서 연간 150억원대 수출 전망을 내놓고 있는 펜타비전의 사업전략은 분명 게임산업계의 일반적 흐름과는상반된 발상의 전환 그 자체다.

그는 내년부터 해외에서 '디제이맥스'를 앞세운 브랜드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디제이맥스' 시리즈물을 계속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머천다이징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일본이나 북미쪽 아케이드게임시장을 보면 캐릭터, 만화, 인형, 신발, 가방, 의류 등 부가상품매출, 로열티 수입이 어마어마 합니다."

1개의 게임으로 멀티플랫폼을 구축, 다양한 로열티 수입과 매출 다변화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북미와 유럽 등 거대 시장을 향한 차승희의 행보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 차승희의 성공론

게임산업 전망이 궁금했다. 그는 국내 게임시장 역시 철저히 규모의 경제,제로섬게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즉 100억원대 이상 투자가 기본일 정도로, 이제는 몇 명이 모여서 개발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의미다.

제로섬이란 이젠 게임유저들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상태라는 설명. "기존 게임보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유저들은 옮겨가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게임수가 얼마 되지 않을때는 누구나 대박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젠 정말 획기적인 게임이 아니고선 유저들이 옮겨가지를 않습니다. 이젠 뚫고 들어가기가 정말 힘든 실정이죠."

아케이드게임, 오락기 등 복고풍 게임사업에 몰두한 배경이 궁금하다. "패키지 게임을 하다가, 아케이드게임이 자연스레 보이더라구요. 또 갑짜기 오락기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결국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차승희의 성공론이 궁금하다. "멀리보는 전략적 사고와 전직원과 함께 비전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그는 직원들에게 늘 ‘프로패셔널’하게 일할 것을 주문한다.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합니다. 물론 과정도 중요하지만,프로의 세계에서 실패하면 무능하거나, 나쁜 사람이 됩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단다. "왜냐하면 모두가 열심이기 때문이죠. 완벽하게 해야 합니다." 차 사장이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연간 7억원규모를 지급하는 것 역시, 완벽한 프로를 만들기 위한 나름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른 회사에 가서 리더가 될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편하게 지내는 것은 그 시간만큼 날리는 겁니다.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게임이 성공할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일은 게임개발회사 CEO의 숙명 같은 일. 펜타비전 내 게임 개발은 허들넘기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게임은 보여지고, 들리는게 일단 화려해야 합니다. 그 다음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죠. 재미, 즉 게임성이 떨어지면,무조건 실패합니다."

조직관리론이 궁금하다. "게임바닥은 이직율이 매우 높습니다. 비전을 함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CEO가 실제 해주는 것, 행동이 중요합니다. 말은 다 해준다고 해놓고 실천을 안하면 직원과의 신뢰는 깨지게 마련이죠."

펜타비전 차승희 사장. 그는 아케이드게임과 오락기라는 사양산업, 철 지난 사업아이템으로 평가받는 분야에 뒤늦게 뛰어들어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뚝심의 모험기업가였다. 모두가 철수한 아케이드게임,오락기 시장에 '나홀로' 뛰어든 그의 글로벌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펜타비전이란 회사명은 창업초기 멤버가 5명이었고, 각자 생각하는 바를 이루자는 뜻에서 'PENTA(5) 비전'이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음악을 좋아해 음악게임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음악게임을 가지고 세계시장을 평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김광일 객원칼럼니스트(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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