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환의 경제칼럼]저물어 가는 미국의 시대


미국 금융위기는 미국 중심 세계질서의 붕괴 신호탄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경제칼럼을 쓰기로 마음먹고 제목을 '생활속의 경제이야기'로 정했습니다. 장사를 하려면 20-30대 여성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이유와, 제대로 살려면 자기 나이보다 30% 젊게 살아야 할 이유 중 어떤 주제로 2번째 칼럼을 쓸까 고민 중이었는데 미국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바다 건너 미국의 위기로 우리 증시가 폭락하고 9시 뉴스에서 20분 가량이 미국의 위기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들을 분석하는데 쓰였습니다. 지구촌, 세계화란 단어가 정말 실감날 정도로 우리는 서로 얽혀 살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전기가 될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뭔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미국 경제위기도 우리생활의 일부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살짝 곁눈질을 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마침내 붕괴되고 있다는 신호탄입니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서방의 맹주로 군림했고 냉전에서 소련을 제압하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팍스아메리카 시대가 저무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당장 망하거나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세력이 금새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달러와 군사력이라는 두 가지 무기로 지구를 지배해온 절대 권력이 어쩔 수 없이 무장을 해체하는 과정의 마지막 한 장면(최후라고 보장할 수는 없음)이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해 온 힘은 '달러'와 '군사력'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달러와 군사력입니다. 이 중 달러의 힘은 군사력보다 더 강합니다. 군사력을 뒷받침 하는 게 바로 달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팍스아메리카의 역사는 미 달러화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달러화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 잡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3년 전인 1945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시골마을 브레튼우즈. 전후 통화제도를 둘러싼 브레튼우즈 회동은 미국의 의도대로 끝납니다. 금을 대신해 달러가 통화간의 교환수단으로 인정됩니다. 단, 미국은 다른 나라가 요구할 경우 35달러를 가져오면 금 1온스를 내주기로 약속합니다. 달러를 매개로 각 통화간의 교환비율을 정하는 고정 환율제도를 도입하고 미국은 달러를 금과 교환해주기로 약속하는 달러 중심의 변형된 금본위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미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막대한 재정적자로 달러화는 그 뒤 지속적으로 약해져 왔습니다. 달러가 많이 풀리자 많은 나라들이 금으로 교환할 것을 요구했고 닉슨 미국대통령은 급기야 1971년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하고 고정환율제 아래서 달러를 평가절하(스미소니언협약)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76년 고정환율제를 변동환율제(킹스턴체제)로 전환하고 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값을 폭락시킵니다.

설명이 좀 복잡합니다. 한 마디로 달러는 굴곡은 있었지만 값어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도 기축통화 노릇을 해 왔습니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 금값은 국제시장에서 온스당 779달러 60센트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63년 전(1온스당 35달러)에 비해 달러의 값어치가 22분의 1로 쫄아 든 것입니다.

미국의 달러 가치가 이처럼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번에 발생한 금융위기의 원인과 63년간 달러가치가 추락한 이유가 같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빚(채무)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미국 정부는 빚(재정적자)에 의지해 나라를 경영하고 미국 국민도 빚(모기지론, 할부금융)으로 생활을 하고 투자은행도 빚(레버리지)으로 투자를 하다가 이런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외상이라면 소라도 잡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집도 잡아먹고 회사도 잡아먹고 나라도 잡아먹을 지경에 이른 상태입니다.

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화에서 출발한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예측할 능력도, 자료도 없습니다. 그러나 빛에 의지하는 살림은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진리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민들에게 지난 10년간 주택은 단순한 거주 수단만이 아니었습니다. 현금자동인출기(ATM)란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주택 가격의 90% 이상을 융자받아 집을 사고 값이 오르면 추가로 대출을 받아 소비에 사용해 왔습니다. 저금리정책과 늘어난 돈 때문에 집값은 지속적으로 올라 좋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미국민들이 대출을 받아 소비하면서 엄청난 양을 수입합니다. 해마다 수천억달러씩 무역적자가 쌓입니다. 외국에 대한 빚입니다. 미국 연방은행이 발행한 달러는 종이입니다. 절대강국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른 물건을 가질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 순간 달러는 종이로 변합니다. 애써 만든 물건을, 서비스를 미국에 주면서 종이를 받으며 만족하는 이유는 바로 신뢰에 있습니다.

미국의 부채 규모는 이미 10조달러가 넘고 21개월에 1조달러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도 수천억달러에 달하고 부채에 지급하는 이자만도 2003년 한해 3천300억달러에 달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엄청난 부채가 있어도 견딘 이유도 '그래도 미국인데' 하는 신뢰에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모기지 기관인 패니매이와 프래디맥에 2천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외국의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이 이들 기관을 미국 정부로 생각하고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패니매이와 프래디맥의 채권을 보유한 기관들은 미국 정부의 빚 상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같은 기대와 신뢰를 깨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미국정부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신뢰에는 이미 금이가기 시작했습니다. 막연한 걱정 대상이던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민간의 과소비는 미국 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요소라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습니다. 세계 3-5위의 투자은행이 몰락하고 미국 최대 보험사 AIG의 파산가능성까지 논의될 정도로 미국의 병은 깊고 미국 정부조차 제대로 된 처방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약화된 제조업을 대신해 세계시장을 누비던 금융산업 특히 투자금융사들이 몰락함에 따라 미국의 외국에 대한 시장개방 전략은 큰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금융시장 개방을 막무가내로 요구할 명분이 줄어들었고 개방된 시장에서 주역으로 활약할 투자금융사들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위기 극복은 '빚 잔치'부터

미국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빚 잔치를 해야 합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달러화를 팔고 다른 투자수단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면 달러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미국 국민들은 무엇인가를 팔아 달러를 다시 사줘야 합니다. 헐값에 미국의 자산을 외국 자본에 넘겨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고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고통의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미국에 최근 다녀온 친구의 전언입니다. 마이애미도 망했고 LA도 썰렁한데 뉴욕은 활기차게 돌아가 이유를 물었답니다. 아랍, 중국, 유럽 등지에서 현금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와 값싸게 나온 물건이 없나 찾고 흥정하고 있는 게 이유라는 답을 들었답니다.

자본주의 역사에 수많은 거품이 있었고 전우의 시체를 넘어 경제시스템은 발전해 왔습니다.

금융시장은 항상 탐욕과 망각과 몰락을 반복하며 그런대로 한걸음씩 전진해 왔습니다. 미국의 위기도, 이에 따른 세계경제의 위기도 예전에 그랬듯이 종말로 연결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이번 금융시장의 위기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신뢰가 결정적으로 훼손돼 팍스아메리카의 영화가 이젠 서산에 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의 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창환 칼럼니스트(column_choieda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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