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웅의 여시아문(如是我聞)] 문제는 생태계다


한국 소프트웨어산업의 쇠락의 원인들- 1

애플의 앱스토어(http://www.apple.com/iphone/appstore/)가 문을 연지 한 달 만에 3천만 달러(약 3백3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앱스토어는 애플이 만든 휴대전화 아이폰에 쓰이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열린 장터다.

애플은 모든 응용 소프트웨어들을 직접 개발하는 대신 이런 장터를 열어두고 거래 건당 30%의 수수료를 챙긴다. 나머지 70%는 개발자의 몫이다. 원하는 개발자는 누구나 이곳에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올려두고 공짜로 내려 받게 하거나 혹은 유료로 판매할 수 있다.

지금까지 모바일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휴대폰 제조업체나 이동통신사와 거래를 해 왔다. 이들이 간택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소프트웨어라고 해도 그것으로 그만인 구조였다. 애플의 앱스토어는 처음으로 소비자와 직접적인 거래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결과는 매출액이 말해주듯 적어도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다. 미국의 한 대학생은 취미로 개발한 퍼즐 게임을 앱스토어에 올려 매일 2천 달러(약 2백20만 원)가 넘는 돈을 벌고 있다. 게임업체 세가는 9.99 달러짜리 슈퍼몽키볼 게임을 20일 동안 230만 개나 팔아, 간단히 300만 달러를 챙겼고,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이 올려 놓은 페이스북용 소프트웨어는 다운로드 횟수 1백만 건을 넘겼다.

앱 스토어의 성공은 아이폰의 매출 증대를 부르고, 더 많은 아이폰 사용자는 다시 아이폰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드는 개발자와 기업들의 숫자를 늘린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애플의 성공은 상생구조에서 비롯

애플의 성공을 지켜보는 마음에는 부러움과 씁쓸함이 함께 있다. 앱 스토어의 성공은 곧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한국 IT가 왜 지지부진한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뒤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가 애플을 중심으로 거대한 바이오스피어(biosphere)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만들고 있는 거대한 나선의 상승구조 곳곳에 상생 혹은 윈-윈의 구도가 있다.

음반업계는 MP3 플레이어 아이팟과 온라인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인 아이튠즈를 통해, 넵스터로 상징되는 온라인 무한 다운로드의 충격으로 급격히 줄어든 CD 시장의 공백을 메워 줄 구명줄을 찾았다. 사용자는 한두 곡을 듣기 위해 한 개의 CD를 통째로 사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곡만을 따로 살 수가 있게 되었고, 이제는 절판된 노래들을 단 한번의 검색으로 찾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기존의 음반가게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는 곡들이 전체 매출의 수십 %를 차지하게 했고, 역시 아마존에서 나타난 오래된 책의 꾸준한 판매 현상과 묶여 롱테일(long tail) 경제학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탐 존스라든가 CCR, 카펜터스 등이 다시 인기를 끌게 된 팝의 복고현상은 그 덤이라 부를만 하다.

앱 스토어의 선반에는 '희망과 기회'가 놓여 있다

그리고 앱 스토어가 나타났다. 앱스토어의 선반에 놓인 것은 다름아닌 ‘희망과 기회’다. 개인 개발자는 거의 아무런 부담이 없이 자신의 창업기회를 확인해볼 수 있다. 하드웨어업체나 통신사의 구매담당자의 안목과 변덕에 전적으로 기대는 대신, 무료로 사용기회를 제공해 소비자로부터 직접 판단을 받아볼 수 있다.

바로 창업하는 대신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상품화 능력에 대한 검증을 받아볼 수 있다. 한번 히트한 소프트웨어는 최소한 몇 달은 매출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동안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받아가며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도 있고, 이 실적으로 투자를 유치할 수도 있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가진 아이폰의 효율을 백 배, 천 배로 올려줄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어느 휴대전화 서비스도 하지 않던 일이다. 세가가 대박을 터뜨린 게임 ‘수퍼몽키볼’은 본래 갖고 있던 게임중 하나를 아이폰용으로 바꾼 것일 뿐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새 장이 열린 것이다.

'3년차 도산의 굴레'를 못 벗는 한국의 SW산업

그리고 한국. 지독한 농약이 휩쓸고 지나간 토양처럼 이곳의 생태계는 무섭도록 황폐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제 거의 아무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고등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인 젊은이들은 예외 없이 의대를 지망한다. 문과 출신 졸업생들이 모두 법대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10년 뒤 이들이 사회를 떠받치게 될 때쯤 한국은 극심한 인재의 불균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골목골목에 오로지 성형외과가 아니면 변호사 사무실이 있을 뿐인 나라. 변호사가 하릴없이 성형을 해주고 의사가 소송을 거는 품앗이라도 해주지 않으면 돈이 아예 순환이 되지 않을 나라.

그래서 젊은이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그들의 뒤에 드리운 것은 일그러진 생태계의 희생양이라는 그림자다. 통신회사들은 굴종에 가까운 일방적 계약을 당연히 여기고, 정부를 포함해 굵직한 갑(甲)들은 어떤 종류의 소프트웨어든지 SI 하청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구사한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들이 대개 3년차 도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의욕에 가득 차 회사를 차리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첫 번째 납품처를 따내면 이곳은 대개 ‘레퍼런스’가 된다. ‘실적을 보여줄 수 있는 첫 번째 케이스가 되니 마진없이 싸게 해주어야 하는 곳’이자,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보여줘야 하므로 온갖 요구들을 모두 거의 대가 없이 들어줘야 하는 곳’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첫번째만 ‘레퍼런스’가 아니라는 데 있다. 계약하는 모든 곳이 레퍼런스의 지위를 요구한다. 갑마다 요구에 맞게 ‘커스터마이징’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거래처가 늘어나는 딱 그만큼 소프트웨어의 종류가 늘어나게 된다. 무늬만 같을 뿐 실상은 다 다른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번 째 스텝이다.

해마다 소프트웨어의 버전을 높이고 거래처가 늘어나면 바야흐로 마지막 단계가 시작된다. R&D를 하는 대신, 늘어난 거래처마다 커스트마이징을 해주느라 몇 년간 날밤을 새온 창업때부터의 개발자들은 이제 완전히 지쳐버렸다. 수십 개로 늘어난 버전은 더 이상 아무도 정확히 관리하지 못한다. 거래처가 늘어나는 그 만큼 커스터마이징 요구도 늘어나므로 개발자 수는 뽑아도 뽑아도 모자란다.

이때쯤 창업때부터의 개발자들이 떠나고, 새로 들어온 개발자는 ‘이전 제품의 코드가 워낙 꼬여 있으니 아예 새로 개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뒤는 우리가 다 아는 대로다. 새 버전의 출시는 대개 하염없이 지연이 되거나, 혹은 출시를 한 다음 한없는 버그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완전히 진이 빠진 채 빚더미에 묻힌 창업자는 결국 폐업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진이 빠진 것은 창업자뿐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탈을 쓴 SI 하청회사에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황금기를 밑도 끝도 없는 야근으로 지새운 청년은 이윽고 학교 후배들에게, 친척 동생들에게 ‘절대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 하지 말 것’과, ‘의대를 가든가 공무원이 될 것’을 저주처럼 들려주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10년 뒤 변호사와 성형외과 의사만 있는 나라가 된다고 해서 이 젊은이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핵심은 생태계의 복원이다

미국의 인구통계조사국(USCB)에 따르면 미국 전체 2천500만여 기업 가운데 약 78%가 1인 기업이다. 1990년대 말 벤처 거품이 꺼지자 미 서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창조형 1인 기업’ 창업 붐이 일었다. 2005년 한 해 동안 실리콘밸리 지역에서만 3만3천 개의 1인 기업이 설립됐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이를 통해 창출된 고용효과가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의 신규 고용 수준을 넘은 것으로 분석했다. 그런 1인 기업의 한 축에 앱스토어에 자기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올려 매일 2천 달러를 버는 대학생이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고민할 것은 ‘생태계의 복원’이다.

생태계는 ‘순환’한다. 망치는 데는 한 순간이면 되지만 되살리는 데는 한 세대가 필요할 수 있다. 오픈소스 개발에 자금을 조금 더 지원한다고 해서, 대기업들이 하청업체에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서 한국의 소프트웨어 업계가 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농약을 조금 덜 친다고 해서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생태계는 전체 사이클의 어느 하나만 건드려서 살아나지 않는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살리는 일이 곧 한국 사회를 되살리는 일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지 못하는 나라는 이미 망한 나라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계에서도 가장 재기발랄하고 영특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비전을 되돌려 줄 때다.

/박태웅 열린사이버대학교(OCU) 부총장(column_parkt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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