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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국가적 아젠다가 필요하다-하]정부·기업 역량결집을


범부처 지식재산전략 초기단계…'아젠다' 발굴 시급

앞서 살펴본 대로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은 수년에 걸쳐 지적재산 전략체계를 고도화한 반면 우리나라는 이제 범부처 차원의 역량을 모으는 초기단계에 있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해 말 과학기술부를 중심으로 산업재산권 관련 부처들이 참여하는 '지식재산전략체계'를 구축, 5대 전략을 바탕으로 세부 실천과제를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지식재산 창출과 기존 기술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지적재산 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소극적인 전략에 그치고 있다. 특허 분야에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해 후발국가 및 경쟁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선진국의 적극적인 전략체계와 사뭇 동떨어진 느낌이다.

◆소모적 논쟁 그만…국가 '아젠다' 발굴 시급

지난 2002년 일본에선 총리가 참여하는 '지식재산 전략회의'를 구성하고, 연이어 '지식재산전략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국가전략을 세우기 위한 작업이 급물살을 탔다. 이처럼 국가적인 지적재산 정책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지식재산위원회(IPC), 일본은 게이단렌같은 민간기구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전략수립에 동참했다.

이 민간단체들은 정부가 지적재산 개혁을 촉구하록 성명을 발표하는가 하면, 기업 입장에서 불리한 수출상대국의 특허제도나 전략을 국가가 나서서 수정해주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정부보다 앞서 지적재산전략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방안을 제시한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선 3개 지식재산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안들은 정부조직법 문제로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지식재산부' '지식재산처'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등을 설립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의 '지식재산전략기본법'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각 지식재산 관련 법안은 조직 관련 조항 외에 '알맹이'가 별로 없고, 선언적인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며 "이보다 기초·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지원근거를 명확히 하고, 지적재산 관리역량을 강화하는 세부 기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각 부처별로 산재해 있는 지식재산 관련 업무를 한 곳으로 모으기보다 각 관련 기관이 함께 참여하되, 구체적인 국가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새로운 조직 신설 없이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식재산전략을 수립·추진하는 게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추진하는 '지식재산전략체계'는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지식재산목표관리제' 도입 ▲우수특허 발굴 및 사업화 촉진 ▲기술가치평가·기술금융 역량 강화 ▲지식재산 전문가 양성 ▲지식재산 보호시스템 구축 등 5대 전략을 기본으로 한다.

이러한 전략들은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역량에 있어 기초체력을 다지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국내외 산업전선에서 우리 기업들이 상대국의 지적재산전략에 따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더 적극적인 내용들을 추가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일본 등이 자국의 지적재산 보호를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도 이에 상응하는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가 지적재산 전략체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선진국 사례와 같이 민간의 참여도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할 사안이다. 국가 '지식재산전략체계'가 수혜자라 할 수 있는 민간기업이 배제된 채 진행될 경우, 급변하는 국제 산업정세 속에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는 건 자명한 이치다.

과기부 관계자는 "'지식재산전략체계' 수립 이전엔 각 정부부처가 참여해 지적재산전략을 고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정부는 물론 국회와 민간기업들도 지적재산 창출 및 보호를 강화하는데 적극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국가 특허전략, 뭘 담을 것인가

국가 특허전략에 담을 내용은 결국 국제사회에서 경쟁하는 민간기업들로부터 찾을 수 있다. 기업들이 원하는 적극적인 지적재산정책 영역으로 ▲국가 차원의 지적재산 보호 및 분쟁대응 강화 ▲원천·기초기술 개발지원 확대 ▲특허 심사·분쟁해결 전문인력 양성 ▲특허서비스 혁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 산업계에서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문화가 확산된다면 우리나라 역시 공고한 '지적재산 장벽'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특허괴물(Patent Troll)'로 분류되는 인터디지털은 유럽이동통신방식(GSM) 관련 특허공세로 국내 삼성전자와 LG전자로부터 거액의 사용료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최근 특허청은 인터디지털을 중심으로 '특허괴물'의 활동에 대한 자료를 내기도 했다.

인터디지털은 지난 2003년부터 우리나라 특허청에 무선통신 관련 특허를 집중적으로 출원했다는 점에서 이번 특허공세는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국내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해외에 비해 원천기술이 부족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러한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정부가 강력한 특허정책을 펴주는 일이다.

원천기술 개발이나 지적재산 전문인력 양성 문제는 정부나 기업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함께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현재 반도체·디스플레이 및 일부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관 R&D 사업을 확대해, 다수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특허를 가지고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는 게 산업계의 지적이다.

국내 한 대기업의 특허경영팀 연구원은 "하나의 기술이 개발돼 상용화되기까진 10~20여년이 소요된다"며 "국가적인 아젠다를 통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원천특허를 보유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연구소 연구원의 특허 재교육 및 기업의 특허전담인력 수급을 위해 특허전문대학원같은 전담교육기관의 설립 역시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다. 미국은 올해 '특허청 5개년 전략계획'에서 향후 5년 동안 특허심사관 7천200명을 증원키로 했다. 국가 간 특허 전문인력의 차이는 결국 전체적인 특허역량의 차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특허서비스의 혁신도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국내외 특허 등록현황을 한 눈에 보여주는 '특허지도(특허맵)'와 특허·사업화가 가능한 기술을 찾아주는 '특허마이닝' 분야에서 국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특허청은 '특허지도' 관련 정보사이트(www.patentmap.or.kr)를 운영하고, 기업들의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데 나서고 있다. 하지만 담당인력이 주로 수작업으로 '특허지도' 작성에 나서다 보니 전산화가 되지 않은 자료나 첨단기술 정보, 최신 동향 등은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상황이다. '특허지도'나 '특허마이닝'은 기업이 특허를 출원하고, 분쟁에 대응하는데 있어 비용·인력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한 휴대폰 솔루션기업 대표는 "중소기업에 핵심특허 하나는 생명과 같이 소중하다"며 "특허청이 국내외 '특허지도' 작성에 심혈을 기울여, 특허청에서 등록시켜 준 특허가 경쟁기업 간 분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허청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계 최단 특허심사처리기간(지난해 12월 기준 9.8개월)이 기업들에 있어선 기술공개의 전략적 시점과 관련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사안. 짧은 특허심사 기간이 자칫 잘못하면 경쟁기업들의 기술 진입을 쉽게 하고, 기존 특허기술에 대한 부족한 분석으로 분쟁을 유발할 소지가 때문이다.

이밖에 산업계에서도 지적재산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정부가 지적재산 전략을 수립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미래시장 선점 및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른 기업의 기술을 사들이거나 제휴를 맺는 일에 적극 나설 것이 요구된다.

국내 대기업들은 경쟁사들과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거나, 해외기술조사에 나서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 제휴나 인수합병(M&A) 외에, 대기업이 우월한 지위를 활용해 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도 적잖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안이다.

명진규기자 almach@inews24.com 권해주기자 postman@inews24.com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이설영기자 ron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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