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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장판교에 홀로 선 장비와 스티브 잡스


 

'삼국지'에 보면 장비가 혼자서 조조의 백만대군을 쫓아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저 유명한 장판교 사건이다.

잠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속수무책으로 도망치던 유비를 쫓던 조조 군대는 장판교에 다다른다. 당시 장비의 수하에 있던 병사는 겨우 20명 남짓. 하지만 장판교에 버티고 있는 장비를 본 조조는 선뜻 진격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물론 근처에 유비의 군대가 매복해 있을 것이라는 '특유의' 의심이 발동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뇌리에는 이전에 자신에게 의탁하고 있던 천하의 맹장 관우가 한 말이 자리잡고 있었다. "내 아우 장비의 용맹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수 천 년 전을 무대로 하는 삼국지와 비슷하다. 장판교에 선 장비 같은 장수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아이디어 맨인 스티브 잡스. 조조의 백만대군은 세계 최대 전자쇼인 CES에 참가한 업체들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가 맥월드 기조 연설을 통해 아이폰과 애플TV를 선보인 이후 CES 전시회 참가자들의 관심이 600마일 떨어진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고 있다.

게다가 파나소닉의 야먀다 요시 최고경영자(CEO) 얘기는 더 놀랍다. CES에 참가했던 야마다 CEO는 곧바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스티브 잡스의 맥월드 기조연설을 들었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새롭게 내놓은 아이폰과 애플TV 셋톱 박스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야마다 CEO는 다시 CES 행사장으로 돌아온 뒤 AP와 인터뷰를 통해 "정말로 맥월드 전시장에 가보고 싶었다. 아이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CES에서는 해마다 2천700여 이상 업체들이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여기서 수 많은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올해는 라스베이거스에는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은 애플이란 괴물까지 CES 참가업체들을 괴롭히고 있는 형국이다. 아이폰과 애플TV가 발표된 이후에는 온통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야후의 테크놀로지 웹 사이트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토퍼 널은 "애플도 일개 회사에 불과하다. 따라서 CES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 만큼이나 그들 역시 CES를 필요로 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애플 제품들에 관한 얘기를 듣길 원한다. 스티브 잡스 한 사람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겁도 없이 세계 최대 전시회인 CES와 같은 기간에 맥월드를 개최하는 애플의 오만함이 통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신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 같은 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맥월드가 개막되기 전까지만 해도 CES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던 외신들이 아이폰 발표 이후에는 맥월드 쪽으로 관심을 돌려 버린 양상이다.

물론 대형 전시회는 개막 이틀째를 지나고 나면 큰 이슈가 없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CES가 맥월드와 스티브 잡스의 후광에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는 것은 다소 과한 진단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개인기는 장판교에 우뚝 서 있던 장비를 연상케 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AP통신이 전하는 것처럼 "CES 참가자들도 온통 그 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정도"다.

여기서 다시 '삼국지' 얘기로 돌아가보자.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던 조조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장판교로 돌아간다. 그 때는 장비 역시 유유히 도망을 간 뒤였다.

이 때 장비는 '장판교를 잘라 버리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다. 그 모습을 통해 장비를 따르고 있던 것이 겨우 20여 명의 군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아챈 조조는 다시 추격전을 시작한다.

지금 아이폰이라는 신제품을 공개한 스티브 잡스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과연 겉만 번드르르한 깜짝 상품에 불과할까? 아니면 겉모양 못지 않게 막강한 내공을 보유하고 있을까?

전 세계에 강한 충격파를 안겨준 스티브 잡스의 멋진 쇼를 보면서 기자는 자꾸만 장판교에 우뚝 선 장비를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 "그의 뛰어난 상상력과 놀라운 연출력의 위력이 어디까지 갈까?"

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를 무척 좋아하는 기자는, 앞으로 그가 보여줄 행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것 같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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