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9월29일-존 패시오렉


 

"단 하루만이라도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봤으면…"

모든 마이너리거들의 소망이다. 영화 '19번째 사나이(Bull Durham)'에서 마이너리그 베테랑 포수로 분한 케빈 코스트너는 자신을 무시하는 싱글A 풋내기들에게 "메이저리그에서 3일 있어봤다. 내 일생 최고의 3일이었다"고 자랑했다. 동료들의 시선이 경이로움으로 가득했음은 물론이다.

마치 소설과도 같은 '일생 최고의 하루'를 보낸 선수가 실제 존재한다. 그의 이름은 존 패시오렉. 빅리그 선수로 활약했던 짐과 톰 패시오렉의 동생이다.

그의 이름은 90년판 기네스북 '하루 동안의 경이' 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는 일생 최고의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까.

세인트래디슬러스 고교에 재학하던 62년 그는 야구, 농구, 미식축구에서 모두 전미 올스타로 뽑힌 타고난 운동선수였다. 그는 야구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전신인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스에 입단했다.

1년 내내 트리플A 모데스토에서 기량을 연마한 끝에 1963년 9월29일 휴스턴 콜트스타디움에서 빅리그 첫 출전의 영광을 안았다. 시즌 마지막 경기였다. 휴스턴은 내셔널리그 9위에 그친 상태였다.

고기가 물을 만난듯 그는 펄펄 날았다. 뉴욕 메츠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3타수 3안타 볼넷 2개로 100% 출루를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파인플레이를 2번이나 펼치며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3타점에 홈플레이트는 4번 밟았다. 휴스턴은 13-4로 승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사람들은 64년을 학수고대했다. 신인왕은 따논 당상이라고 언론은 흥분했다. 그러나 꿈은 이어지지 않았다. 전해 마이너리그에서 다친 허리가 악화되면서 그만 스프링캠프를 망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는 메이저리그에 올라서지 못했다. 67년 구단에서 방출된 뒤 그는 야구인생을 접어야 했다.

패시오렉은 누구보다 노력하는 선수였다. 부상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매달렸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허리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무리한 재활과 훈련이 결국 그의 야구인생을 망친 것이다.

패시오렉의 빅리그 기록은 '완벽' 그 자체다. 당연히 규정타석 미달이긴 하지만 타율 1.000, 출루율 1.000 장타율 1.000의 '퍼펙트 타격'을 남겼다.

'단 하루만'이라는 것은 모든 마이너리거들의 소망이다. 그러나 패시오렉의 전철을 밟고 싶어하는 선수가 과연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형태기자 horse@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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