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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기꾼들-4] 속여야 사는 여자


 

타고난 사기꾼도 있지만,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진 사기꾼도 있다. 박풍선여사의 경우는 어처구니없는 공상이 사기를 빚어낸 경우였다.

2000년 여름, 꽃다운 나이 36세의 풍선은 사소한 부부싸움이 화근이 되어 시댁식구와 칼부림을 하다 6개월간 징역살이를 한 적이 있다. 징역살이가 너무 비참하고 무료하여 시름에 젖어 있다가, 어느 날부터 지금 자신의 처지와 정반대인 화려한 자신을 공상하는 걸 즐기게 되었다.

천애고아로 친정 피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처지라 시댁에서 자신을 만만히 보고 구박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커다란 집에서 공주처럼 자라나 좋은 신랑 만나 부잣집 마나님으로 행복하게 사는 공상을 많이 하였다. 그러면, 설움이 좀 달래지곤 하였다.

그 무렵 풍선은 나중에 시누이가 될 이수희를 만난다. 이수희는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낙천적이고 재미있는 풍선을 좋아했다. 어느 날, 풍선은 수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는 사실 전직 장관 P씨의 숨겨진 딸'이라고 하였다. '친가랑 재산다툼이 있었는데, 기싸움에 실패해 잠시 피난해 와 있지만 곧 거액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꾸며댔다.

어마어마한 사실을 들은 이수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수를 써서라도 풍선을 가까이해야겠다고 생각한 수희는 면회 온 동생 태희에게 풍선을 소개시켜주었다.

출소한 풍선은 자연스럽게 태희랑 사귀게 되었고 둘은 곧 혼인신고를 마친 후 부부생활을 시작했다. 이들 부부는 얼마간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생활에 쪼들려 살고 있는 집마저 처분하게 되자 태희가 풍선을 다그쳤다. 풍선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사기극에 착수하였다.

우선 거액의 유산을 관리할 재산관리인으로 채용하겠다는 미끼를 던지며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재산이 대부분 부동산이라 당장 현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등록비나 세금 등 유지비가 필요하다면서 여러 사람에게 각종 명목으로 수천만씩 받아냈다.

직장 명퇴 후 아파트 수위라도 할까 하는 이들 피해자들로서는 어마어마한 부동산의 관리인이라는 미끼는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게다가, 풍선은 최고급 승용차 에쿠스를 타고 다녔고, 검은색 정장과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들이 돈 가방으로 보이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귀한 집 딸'인 것처럼 보였다.

"정말 너무나 자연스러웠죠. 멋진 차,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옷, 보디가드, 턱끝 하나 손짓 하나로 사람을 부리는 모습......, 교도소에 있을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하곤 했었거든요."

풍선의 사기극은 피해자들을 직접 P 전장관에게 데려감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피해자 중 20년간 세무공무원으로 일했던 김씨를 비롯한 몇몇이 돈을 가져가고도 별다른 성과가 없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다. 풍선은 김씨 등에게 아버지인 P장관을 만나게 해 주겠다며, 직접 데려갈 순 없으니 보디가드로 위장하여 가자며 P장관이 운영하는 Y재단의 집무실로 데려갔다.

어마어마한 풍선의 행차에 Y재단은 VIP로 극진히 대접하며 P장관 집무실로 안내하였다. 물론 경호원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P장관은 50억을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풍선의 말에 넘어갔다. 집무실을 나올 때는 P장관과 팔짱을 끼고 다정스레 나와 친분을 과시하였다. 경호원들로 위장한 피해자들도, P장관도 서로를 바라보며 풍선에 대해 신뢰감을 다졌다.

풍선은 내친 김에 나머지 피해자들에게도 아버지를 보여주겠다며 경호원으로 위장시켜 P장관의 집으로 데려갔다. 한참 후 TV 뉴스에서나 보던 P장관이 대문까지 풍선을 배웅하러 나오는 것을 본 피해자들은 다들 감격해하며 풍선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경호업체에서는 풍선이 경호비를 제때에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들고 다니던 돈 가방에 신문지만 넣어 놓은 것을 보고 P장관을 직접 찾아갔다. 경호업체는 물론 P장관도 그동안 농락당한 것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풍선의 사기행각은 끝이 났고, 다시 철창에 갇혔다.

따지고 보면, 풍선의 어처구니없는 사기행각은 집도 절도 없는 생활난이 그 원인이었다. 평범하게 남편이랑 알콩달콩 살 때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생활난을 해결하려다 보니 할 줄 아는 건 거짓말밖에 없었고, 하다 보니 수습이 안되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더니만...... 나중에 탄력받으니까 더 이상 발을 뺄 수가 없더라구요. 술을 먹다보면 술이 술을 먹듯, 거짓말을 하다 보면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아요. 아직 사기에 두 발 깊히 담그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한 쪽 발 뺄 수 있을 때 빼라고, 두 발 다 담그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콘텐츠 제공= '인터넷 법률시장' 로마켓(http://www.lawmark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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