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오유진 기자] 포스코그룹이 주식 스와프(교환)를 통해 8년 혈맹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전범기업 요도가와 제강소(淀川製鋼所).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일본기업이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전범기업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을 강제로 끌고 가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한 곳이다. 심지어 불과 15살의 한국인 소년도 강제징용의 예외는 아니었다.
7일 정부와 전자공시시스템,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국외강제동원희생자 지원위원회'가 2012년 8월 발표한 일본 전범기업 299개 명단에도 요도가와 제강소의 이름이 올라 있다. 같은 해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도 요도가와 제강소가 일본에서 강제동원작업장 1곳을 운영했다고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을 강제로 동원, 노동 착취를 일삼는 등 전쟁범죄를 저지르면서 자본을 축적해 성장한 일본 전범기업이라는 의미다.
일본 전범기업인 요도가와 제강소와 관계를 구축한 곳이 포스코그룹인 것이다. 포스코는 상임대리인(시티은행)을 통해 요도가와 제강소 지분 1.7%를 보유, 7대 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요도가와 제강소도 포스코 지분 0.05%를 유지 중이다.
요도가와 제강소의 강제동원작업장 내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전범의 증언도 존재한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9년 발표한 '오사카지역 군수공장의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 보고서에는 요도가와 제강소에 강제동원돼 노동을 착취당한 A씨의 증언 내용이 담겨있다.
A씨에 따르면 조선인 징용공은 1942년 처음으로 요도가와 제강소로 끌려왔다. 이후 3년 간 5~7회에 걸쳐 적게는 100여명, 많게는 500여명 정도가 조선에서 끌려왔다.
이들은 '요도가와 제강소 제00회 협화훈련대'라는 명칭으로 각 회마다 조를 편성해 기숙사에 수용됐으며 작은방 안에 3~4명씩 들어갔다. 연령대는 10대와 20대가 대다수였고, 15살 소년도 있었다고 A씨는 증언했다.
조선인 징용공들은 니시요도가와 경찰서 특고계와 아마가사키 헌병대의 엄중한 감시 아래 제판공장이나 산세작업장 등 위험한 곳에 주로 배치됐다. 특히 요도가와 제강소 내 제판공장과 용광로 등 중노동 부문은 8시간 교대가 이뤄졌지만, 그 외 부분은 12시간에 달하는 높은 강도의 노동이 강제됐다.
가장 큰 문제는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인 징용공들은 처음 왔을 때는 용돈도 되지 않는 정도의 임금을 받았고, 2년 정도 지났음에도 평균 임금의 30%가량 낮은 차별 임금을 강요당했다.
뿐만 아니라 저임금·고노동과 더불어 열악한 식량 사정으로 요도가와 해안 인근의 바지락이나 나물을 채집해 목숨을 연명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조선인 징용공들은 도망을 택했지만 잡히면 심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고문을 당한 이들은 제 발로 서지 못하고 업혀서 오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아울러 A씨는 이 보고서를 통해 손가락이 절단되는 등의 부상자나 영양불량, 결핵 등 병으로 죽은 사람이 허다했다고 전했다.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1944년 6월 말 일본 오사카 내 전종업원 중 강제동원자를 포함한 조선인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요도가와 제강소(33.9%)였다.

이러한 전범기업과 포스코가 손을 잡은 것은 2013년이다. 정부의 전범기업 명단이 2012년 발표된 점을 감안하면 요도가와 제강소가 전범기업임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포스코의 경영이념인 '기업시민'에 대한 진정성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요도가와 제강소가 지닌 포스코 지분은) 1%도 안 되는 0.05% 미소(微少) 지분"이라며 "일본의 경제협력자금 수혜기업들 중 포스코만 유일하게 재단에 출연금을 출연했음에도 오히려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라 아이러니한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오유진 기자(ouj@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