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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미얀마 민주주의'...붓 끝에 시대를 담다


[인터뷰] 상명대 디지털만화영상전공 고경일 교수

[아이뉴스24 이숙종 기자] 국민학교 시절 집 근처 만화 대본소(만화방)을 매일 찾아가 '대본소집 양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만화를 좋아하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이 자라 어느덧 50대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만화와 함께 하고 있다. 다만 '읽는' 것이 아닌 '그리는' 사람으로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픈 역사를 붓 끝에 담아내는 시대를 그리는 만화가가 됐다. 16일 상명대 디지털만화영상전공 교수이자 풍자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고경일 교수(53)을 만나 그의 삶 속에 그려진, 그려지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994년 국내 최초 일본 만화 유학길 올라

87학번으로 사범대를 다녔던 고 교수는 당시 시대가 격동의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강의실보다는 길거리 투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 시절. 고 교수도 마찬가지다. 만화를 좋아했던 그는 시대를 반영한 만화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됐다.

"당시 시대를 그렸던 민중 미술이라는게 있었지만 시대가 암울했던 만큼 늘 무섭고 무서운 장르로 기억된다"며 "시대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만화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994년 고 교수는 만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만화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일본이 애니메이션 분야의 선두주자였던 만큼 일본에서 애니매이션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화로 유학을 간다는 것이 생소했던 주변에서는 '다른 것도 아니고 무슨 애들이나 보는 만화로 유학을 가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뜻을 지지해 준 사람은 아버지다. 지지해 준 아버지 덕분에 유학 생활 5년을 마치고 2년간 일본 쿄토 세이카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만화에 시대를 담는다는 것

고 교수가 일본에서 유학 할 시기 위안부가 한·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내 시선은 '있었던 사실조차 부인하며 위안부 존재 여부에 대한 의견으로 분분했다.

그는 아픈 우리 역사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해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다룬 첫 개인전을 일본 현지에서 열었다.

한국인의 일본군 위안부문제로 개인전을 연다는 것에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학교 측에서는 기자회견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인정 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는 것 만으로 일본 내 우익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욕을 하는 사람들부터 한국인이 일본에 와서 이런 일을 하는 의도가 뭔지를 묻는 사람들, 협박성 내용을 보내는 사람들로 학교 사무실 바닥은 항의 팩스로 뒤덮여 업무가 마비 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시대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사실을 정확히 밝히는 것을 넘어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상명대 고경일 교수가 베트남전 역사를 바탕으로 쓴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숙종 기자]

이후 고 교수는 역사에 관심을 더욱 갖게 됐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베트남전의 실상에 대해 베트남인의 관점과 우리 파병군의 시각을 다양하게 담은 책도 수 차례 펴냈다. 최근에는 마치 고 교수의 학창시절과 닮아있는 미얀마 민주주의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내고 있다. 그때의 시대를 거쳐온 선배의 입장으로 잊지 말아야 할 정신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늘 '빚을 지고 있는 마음'이라고도 했다.

"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치열했던 시대를 겪었다. 치열했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시대였다"며 "지금 학생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시대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2030세대들이 살아나가기는 더 팍팍해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오는 세대들이 더 잘 해나갈 수 있게 앞선 세대들이 길을 열어 주고 때론 법적 테두리가 필요한 영역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만화시장 '웹툰' 강세..."만화가에 대한 처우도 이에 따라가야"

고 교수는 최근 우리만화연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우리만화연대는 1995년 설립됐으며 앞서 1987년 설립된 바른만화연대에 뿌리를 두고 80년대 군사정권시절 풍자만화라는 미명아래 정부를 찬양했던 만화들, 90년대 마치 공장을 돌리듯 쏟아냈던 만화를 비판하며 만화계 내부의 자정과 우리만화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단체다.

90년대 만화 주간지 등을 출판하는 곳이 15개에 이를 정도의 만화 호황기도 잠시, 만화 출판이 속속 사라지면서 업계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만화는 새로운 형태의 트렌드로 다시 부활했다.

바로 '웹툰'이라는 장르다. 현재 웹툰 플랫폼만 해도 60여곳이 넘고, 빠르고 편하게 웹툰을 볼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만화가들의 처우는 90년대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우민련 회장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고민하고 있는 것이 만화가들의 처우와 법적 테두리의 안에서 안정적으로 고용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은 많아지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넓어지고 있지만 그만큼 쉽게 쓰여지고 쉽게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웹툰 작가에게는 '웹소설 스토리를 바탕으로 그림만 그려라' 라는 식이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처우는 프리랜서 같은 식으로 고용 안정화도 시급한 문제"라며 "웹툰은 종이 만화보다 더 빠르고 더 간편하게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그 스케줄에 맞게 쉼 없이 그려야 한다. 시대는 달라졌어도 90년대 공장형으로 운영되던 구조가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 창작팩토리 '오감' 이다. 고 교수가 대표로 있는 '오감'은 아직 규모는 작지만 종합 예술인들을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토리와 그림, 이를 통한 드라마, 영화 등 2차 가공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곳에서 만들어내는 구조를 처음 시도하고 있다.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닌 스토리를 같이 연구하고,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그림을 입혀 이를 영상화 시킬 수 있도록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연출도 할 수 있는 구조인데 '예술 장르는 서로 닮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도전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돼...실패하지 않으려 해서 실패하는 것"

"이제 웹툰이라는 장르는 국내 인기는 물론 해외로 수출도 어마어마하게 하고 있다. 국내 웹툰을 바탕으로 이를 모방해 제작하는 해외시장도 확장돼 우리 웹툰이 세계적인 표준형이 될 정도"라며 "시장이 넓고 인력이 많다고 해도 꾸준히 가기 위해서는 스토리, 그림, 영상 연출 분야를 한정 짓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고경일 교수가 4.3제주를 주제로 태블릿PC를 이용해 그리다 지우는 방식으로 판화처럼 표현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숙종 기자]

고 교수는 최근 태블릿PC를 활용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작업으로 마치 판화처럼 보이는 새로운 미술장르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던 베트남전 주제 역사물로 새로운 스토리와 만화를 입힌 작품을 구상 중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도전을 준비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또 누군가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한 발짝 더 발전하는 길이라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에 늘 하는 말이 있다. 한번에 잘하려고 하지 말고 많이 실패해 보라는 말인데,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실패를 하게 된다"며 "이번에 해보려는 작품 역시 실패하면 다시 또 해보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많이 공부해가면서 시작하고 있다. 실패를 하다보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자연스럽게 보이게 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천안=이숙종 기자(dltnrwh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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