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방역' 허상에 취해 흘러가는 골든타임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밝힌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았지만, 신규 확진자 수가 1천 명 이하로 내려오지 않는 날이 그런 날보다 많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정부의 코로나19 사태 대응이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2월 대구에서 벌어진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발 대유행과 8월 광복절 집회 이후 대유행 상황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옹호론보다 비판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돌이켜보면 'K방역'은 기적이었다. 정부의 투명한 공개가 전제된 상태에서 진단키트를 선제적으로 개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의 진단 역량을 갖췄다. 정보통신망을 활용한 역학조사 및 자가격리 시스템, 드라이브 스루 등의 대량검사 체제를 꾸렸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서 '락다운'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며 방역을 이어나가는 데 성공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정부 주도의 관리체계 구축이 이 같은 성과를 이룬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사태 초기에는 중국과의 국경을 막지 않은 것이 논란이 됐다. 또 본격적인 거리두기 국면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기준이 문제가 됐다. 스타벅스에서는 포장만 가능했지만, 맥도날드에서는 식사할 수 있었다. PC방은 문을 열지만, 학원과 노래방은 닫았다. 이에 대한 불만은 K방역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불만의 폭발을 막았다. 세계 곳곳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가운데 국민들은 정부 지시에 따랐다. 피해를 입은 업종의 자영업자들은 불만을 표출할지언정 이를 집단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정부에 대한 신뢰와, 방역에 대한 협조 정신이 바탕이 됐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외면했다. 국민적 참여의식보다 정부주도적 관리 역량이 K방역을 일궈낸 1등 공신이라고 믿었다. K방역의 '허상'에 취한 것이다. 이는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3차 대유행을 경고하는 상황에도 소비 쿠폰을 발행하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발언은 이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기인했을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어떤가. 국민들은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창궐하기 시작한 후 최악의 상황에 부닥쳐 있다. 일일 확진자 1천 명이 일상이 됐고 병상이 모자란 상황이 현실화됐으며 의료계의 과부하가 이어지고 있다. 곳곳에서 연말 약속이 취소되고 이들에게 올해의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K방역에 대한 믿음은 지속되고 있다. 핀셋 방역 강화조치는 이어지고 있지만 거리두기 3단계를 선언하는 것과 같은 강도 높은 조치만큼은 극도로 꺼리는 모습이다. 백신 공급이 비교적 가까이 다가온 상황과 오랜 기간 동안 반복돼 온 방역조치 상향 속 전면 봉쇄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한 정치·사회·경제적 부담이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사후약방문식 방역 조치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 K방역의 원동력이 된 높은 시민의식에 균열이 가고 있고,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한 방역 단계로 인한 사회적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어서다. 결국 K방역의 기적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를 뛰어넘는 과감한 조치를 단기간이나마 펼치는 결정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K방역의 프로세스에 대해 근본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접종 초기인 백신의 신뢰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국민의 헌신을 전제로 '쳐들어오면 막는' 방식의 핀포인트 방역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때문에 더 이상의 시간 벌기식 방역은 무의미하다. 또 이 과정에서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어떤 부담이 있더라도 방역이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은 '숫자'나 '통계'가 아닌 '사람'이다. 방역조치 강화로 인한 순간적 부정적 영향은 있겠지만, 이를 회피하기 위해 사람의 피해를 간과하면 코로나19가 남길 상흔은 사회·경제 곳곳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터널의 끝'이 또 다른 '터널의 시작'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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