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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미래유산] 풀빵 장사 모태 '태조감자국'…현대사 산증인


고도성장기·IMF 등 현대 서울 역사 고스란히 간직…"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라"

아이뉴스24가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글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와 손잡고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노포(老鋪)’들을 찾아 '미각도 문화다, 감수성도 유산이다'를 주제로 음식점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추진합니다. 서울시 미래유산 공모사업으로 추진되는 이번 작업은 기존의 단순한 자료 수집 방식에서 벗어나 박찬일 셰프의 인터뷰, 음식 문헌연구가인 고영 작가의 고증작업 등을 통해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2대, 3대를 이어 온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과 이를 지켜오고 있는 사람들, 100년 후 미래세대에게 전해줄 우리의 보물 이야기가 '맛있게' 펼쳐집니다. <편집자 주>
서울 성신여대입구역 앞에는 60년 역사의 '태조감자국'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서울 성신여대입구역 앞에는 60년 역사의 '태조감자국'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서울 성신여대입구역에 위치한 돈암시장 인근에는 독특한 인테리어의 감자탕집이 있다. 오래된 손글씨가 걸려 있고, 메뉴 이름도 '좋~다', '최고다' 등 감자탕집이라면 으레 떠오르는 느낌과 다르다. 바로 60년 역사를 간직한 현대사의 산증인 '태조감자국'이 그 곳이다.

태조감자국의 전신은 '부암집'이다. 충청북도 진천서 상경한 고(故) 이두환 옹이 풀빵 장사를 하다가 차린 식당이었다. 부암집은 배고프고 힘들던 시절 서민들에게 맛있는 밥을 제공하는 백반집이었다. 딱히 정해진 메뉴도 없었고, 손님이 찾아와 만들어 달라 하는 요리를 그때그때 만들었다.

창업자 부부의 요리 실력은 오래지 않아 널리 알려졌다. 부암집은 어느새 인근에 '찌개가 맛있는 집'으로 자리잡았다. 또 2대째 대표인 고(故) 이규회, 박이순 부부가 이어받으면서 '감자국'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부암집이 선보였던 '감자국'은 시간이 흘러 '감자탕'으로 자리잡았다.

부암집은 1970년대 들어 태조감자국으로 이름을 바꾼다. 부암집에서 요리를 배워 나간 직원들이 독립하면서 같은 메뉴를 '원조 감자탕' 등의 이름으로 소개하면서 원조를 넘는 '태조'라는 의미를 담았다. 2대 대표의 익살이 담겨 있는 메뉴 이름이 정착된 것도 이 즈음이다. 현재는 3대 대표인 이호광 대표가 이어받아 경영하고 있다.

태조감자국 매장 벽면에는 2대 이규회 사장의 정신이 담긴 문구들이 붙어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태조감자국 매장 벽면에는 2대 이규회 사장의 정신이 담긴 문구들이 붙어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태조감자국의 역사에는 서울의 역사가 담겨 있다. 부암집 시절에는 종로로 가는 전차의 종착역 인근에 위치해 시민들의 배를 채워 주는 역할을 했다. 2대 째에 들어서는 24시간 동안 일하며 인근의 택시·버스기사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기사식당'의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맑은 감자국은 지금의 진한 감자탕으로 변해 갔다.

또 90년대 들어서는 인근에 위치한 동대문 패션상가 상인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들은 늦은 시간 일하고 퇴근길에 아침 식사를 가게에서 하곤 했다. 동대문 시대가 저문 오늘날에 들어서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에서 대학생에 이르는 2, 3대가 즐기는 푸짐한 한 끼 식사가 됐다.

태조감자국은 지금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원가가 비싸더라도 감자국이라면 감자를 많이 넣어야 한다는 2대 이규회 대표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결정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태조감자국의 '모토'가 됐고, 지금도 가성비 높은 맛집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는 원동력이 됐다.

이호광 대표는 "처음에 아버지가 양을 많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남는 게 없어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아버지가 옳은 결정을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도 합리적 가격에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식당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광 태조감자국 대표(우)는 "나는 가게를 지켜나가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이호광 태조감자국 대표(우)는 "나는 가게를 지켜나가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오랜 시간이 흐르며 메뉴를 즐기는 방법도 크게 변했다. 과거 모든 고객에게 한 그릇씩 부어 주던 감자국은 냄비에 함께 끓여먹는 감자탕이 됐다. 국밥으로 즐기던 소비자들은 이제 따로 탕을 퍼 국처럼 즐기거나, 밥 두 그릇을 시켜 한 그릇은 따로 볶는 식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변화에도 태조감자국이 담고 있는 서울의 역사는 변하지 않았다. 경제 급성장 시기 소외된 서민의 음식이었던 감자탕은 수십 년이 흘러 몇 차례의 위기를 겪은 대한민국의 대표 별미로 자리잡았다. 또 할아버지와 손자가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세대를 아우르는 음식이 됐다.

이 대표는 태조감자국을 자신의 두 딸에게 물려줄 지 아직 결정을 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넌지시 물어본 적은 있고, 딸들이 가게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물려주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그는 태조감자국이 앞으로도 쭉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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