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카카오뱅크의 '대니얼' '케니' '주니'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1. 지난 4월 간담회를 마친 대니얼(Daniel) 대표가 단상에서 내려오자 기자들이 에워쌌다. 올해 하반기부터 지속 성장을 위해 기업공개(IPO) 준비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히자 추가질문을 하려 몰려 든 것이다. 다음 일정이 예정돼 있어 서둘러 떠나야 하는데 이것저것 대답하다보니 시간이 자꾸 늦어졌다. 그때 한 젊은 직원이 “대니얼! 너무 늦었어요. 어서 가야해요”라며 곧 50대가 되는 CEO에게 소리쳤다. 취재진은 순간 ‘얼음’이 됐다. 대표님 또는 사장님이 아닌 대니얼이라니. 상명하복 위계질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너무 낯선 상황이 연출됐다. 직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니얼, 서두르세요. 빨리 빨리요”라면 손짓까지 해댔다. 그러자 대니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빠져 나갔다.

카카오뱅크 '저금통'을 기획한 주니(왼쪽)와 케니가 지난 6월 판교 카카오뱅크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이뉴스24 DB]

#2. 뉴플랫폼기획팀의 케니(Kenny) 팀장과 주니(Junie) 매니저는 1원부터 999원의 자투리돈을 규칙에 따라 매일 자동으로 저축해주는 ‘저금통’을 개발했다. 두 사람은 참신한 상품을 기획하기 위해 ‘계급장’을 떼고 붙었다. 상사와 부하 관계는 없었다. “케니” “주니”하며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다. 그 결과, 예를 들어 계좌 잔액이 55만3520원일 때 동전 모으기 기능을 켜놓으면 520원의 잔돈이 저금통으로 넘어가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통장 잔고가 55만3000원으로 깔끔하게 정리까지 되니 기분도 좋아진다. 또 내 계좌에 얼마가 쌓였는지 금액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대신에 ‘피자 한판’ ‘자판기 커피’ ‘PC방 1시간’ ‘조조영화 티켓’ 등의 아이템으로 대략 적립액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니얼, 케니, 주니 세 사람은 모두 카카오뱅크에 다닌다. 본명은 각각 윤호영, 김기성, 김지연이다. 회사 안에서도 밖에 일을 보러 나가서도 자연스럽게 “대니얼” “케니” “주니”라고 부른다. 대니얼 대표님, 케니 팀장님, 주니 매니저님이 아니라 그냥 대니얼, 케니, 주니다. 무늬만 수평이 되지 않도록 피라미드식 타이틀은 아예 뺐다. 영어이름을 지을 때 약간의 제한은 있다. 두 명의 제시카, 두 명의 로버트는 되도록 만들지 않는다. 현재 카뱅 직원이 800명을 넘다보니 똑같은 이름을 쓰면 외부에 혼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겹치지 않도록 미리 조율한다.

직급 없이 서로 영어이름을 부른 덕에 수평적 조직문화가 금세 자리를 잡았다. 지금까지 무슨 회의를 하다보면 펜으로 끄적끄적 기하학적 도형 몇 개를 그리며 시간을 죽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대표님·팀장님·매니저님 꼬리표를 없애고 그냥 영어이름을 사용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입 꾹 다물고 눈치만 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완전 토론배틀이다. 창조적 대안을 도출해 내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언택트(Untact) 시대를 맞아 최근 카뱅의 실적이 눈부시다. 신용대출 잔액이 해마다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해 부산·광주·전북·대구·경남·제주은행 등 6개 지방은행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2017년 7월 3627억원에서 2018년 7월 6조7633억원, 2019년 7월 10조4622억원으로 늘었다. 올해 7월에는 14조2749억원을 기록해 14조를 돌파했다. 이런 숫자를 기반으로 한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비주택담보 개인대출 시장에서 카뱅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5% 가량이다. 5%면 작아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5대 시중은행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카뱅이 신용대출 시장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쉽고 빠른 대출 과정이 고객을 사로잡은 영향이 크다. 카뱅 대출 고객은 소득 및 재직증명서 등의 각종 서류 제출 없이 나의 신용대출 한도를 조회하고 신청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중도상환 수수료도 없어 실질적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측면도 있다. 이쯤 되니 오히려 이용하지 않는 게 손해 보는 느낌이다.

많은 수의 모바일앱 이용자 기반도 신용대출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지난 6월 말 기준 카뱅을 월 1회 이상 접속하는 이용자 수(MAU)는 1173만명이다. 계좌 개설 고객수는 2019년 말 1134만명에서 1254만명으로 10.5% 가량 증가했다. 특히 20~40대에서 카뱅을 사용하는 비율이 47.6%로 높았다. 대출 수요가 높은 젊은층에서의 높은 이용률이 신용대출 성장을 견인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카뱅은 또한 올 상반기 450억여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어닝 서프라이즈다. 2분기 순이익이 268억원으로 상반기 누적으로는 453억원이다. 2분기 기준으로 전년 동기(30억원)보다 793.3%, 상반기 기준으로 전년 동기(96억원) 대비 371.9% 급증한 수치다. 카뱅 관계자는 “대출 증가에 따른 이자부문의 이익이 늘고, 증권계좌개설 및 신용카드 모집대행 수수료 수익에 따른 비이자부문의 순손실 규모가 줄면서 순이익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국내기업들이 격식 파괴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앞다퉈 영어이름을 도입하고 있다. 처음 의도대로 잘 흘러가는 곳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삼천포로 빠지는 곳도 있다. 스타트업인 카뱅은 지금까지 긍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100% 영어이름 덕은 아니겠지만, 놀라운 실적행진에 영어이름도 한몫한 것은 틀림없다. 결국 구성원들이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런 도전 과정에서 영어이름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뿐이다. 다만 생각보다 더 강력한 불쏘시개다.

/민병무 금융부 부국장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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