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결국 믿을 건 기업·기술뿐이다


[아이뉴스24 박영례 기자]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당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한류 규제)' 등 이른바 무역보복이 심화됐을 때 얘기다.

당시 국내는 중국인 관광객 급감 및 중국 현지 판매점 철수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속수무책이던 기업들 사이에서 맞대응 카드로 반도체 수출을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와 2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양사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70%를 웃돈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기업에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면 다른 대안이 없는 중국에는 직격타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해당 기업들도 실현 가능성 없다며 펄쩍 뛰었다. 글로벌 시대 가치사슬이 촘촘히 얽혀있는 상황에서 부품 수출 중단은 결국 완제품 판매 감소 등 역풍을 몰고 올 게 뻔하다. 중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파국을 피하기 어려운 극단의 선택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처럼 농담 같던 얘기는 우리와 외교 갈등을 빚던 일본이 주요 부품 수출을 중단한 무역보복에 나서면서 현실이 됐다. 중국과 무역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아예 동맹국이나 기업에 중국 화웨이 통신장비나 바이트댄스의 소셜미디어 앱 틱톡 사용 중지를 대놓고 요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렇듯 지금 세계는 특정 국가 기술 종속이 과거 핵, 전략물자, 희소자원에서 바통을 넘겨받은 새로운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찌감치 신냉전시대 개막을 예고했다. 2018년 중국산을 비롯한 철강 및 알루미늄을 상대로 수입 제한 및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1982년 이란 원유사태 이후 폐기되다시피 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부활시켰다.

이는 1962년 소련의 쿠바 핵미사일 배치에 대응해 소위 자유주의 국가 간 경제적 유대 강화를 목적으로 제정된 조항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들어선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의 한가운데로 소환한 것이다.

232조가 발효되기 직전인 2017년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최근 9년래 최대치를 찍었던 해다. 이중 70%는 중국에서, 또 이의 30%는 중국산 컴퓨터, 가전, 휴대폰 등 첨단 IT제품 수입에서 비롯됐다. 미국이 중국과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선언하고 그 최우선 타깃이 화웨이가 된 이유를 대략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글로벌 저성장시대 추락하는 경제 성장률과 부족한 일자리 문제가 보호무역주의 부활과 함께 낡은 이념의 갈등 대신 특정국 제품과 기술 의존도를 국가를 위협하는 안보 문제로 둔갑시킨 셈이다. 그만큼 각국이 국가 경쟁력과 안위를 위해 독점적 기술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뜻도 된다.

우리 역시 일본과의 외교적 갈등이 핵심 부품의 수입 제한과 맞대응, 다시 지소미아 등과 같은 안보 문제로 불똥이 튀는 확전양상을 빚고, 결국 기술 국산화 경쟁으로 치닫게 한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의 자국 우선주의나 탈 EU와 같은 고립주의 확산 등 세계화의 후퇴, 기술 패권 다툼은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뒤집어 보면 우리나라와 같이 사람이나 자원 등이 부족하고 수출 의존도가 큰 국가에는 결국 독점적 기술, 이를 주도할 기업들의 경쟁력이 결국 국가 경쟁력 및 생존전략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코로나19 성공적 방역을 자처하는 K방역 뒤에도 우리 기업들의 앞선 ICT 기술력이 한몫했다. 글로벌 각자도생 시대, 믿을 건 역시 실력뿐이다.

다만 우리 정부의 상황 인식과 판단도 이와 같은지는 모르겠다. 한국판 뉴딜 등 각종 국정과제와 프로젝트에 주요 기업을 줄 세우면서도 규제 완화는 고사하고 자고나면 새 규제가 등장할 정도다. 요즘 기업 현장에선 차라리 본사를 해외로 이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이러다 이 말도 현실화 될까 겁난다.

/박영례 정보미디어부장(부국장) yo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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