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용변 볼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제한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소설가 이영훈의 단편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에 나오는 부분이다. G20 정상회의가 열린 2010년 11월 정부는 '보안상의 이유'로 정상회의 개최 장소 삼성동 코엑스 일대 공중화장실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 주인공은 결혼정보회사에 비싼 돈을 주고 주선받은 맞선 1시간을 앞두고 심히 좌절한다. 갑자기 용변은 너무 마려운데….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

누구나 극한의 상황을 앞두면 실존적 결단을 강요받는다. 다리가 풀리고 괄약근에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진다. 이대로 모든 것을 놓아버릴까. 아무데서나 싸면 안 된다는 현대 도시문명의 절대 금기를 이렇게 깨버리는 것일까, 라고 삼성역 지하보도에서 무릎이 꺽인 채 식은땀을 흘리며 고민하는 주인공의 눈 앞에, 광고판 속 데뷔 4년차 소녀시대 멤버들의 미소만은 환하다.

G20 정상회의에 대한 MB정부의 기대감은 늦가을 KBO 포스트 시즌 열기보다 뜨거웠다. 서울시는 정상회담 기간에 맞춰 서울시내 분뇨 처리시설 3곳과 분뇨차량 즉 '똥차'들의 운행을 중단했다. 이들 시설은 인천공항도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무려 G20 정상들께서,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당당히 G20의 일원으로 성장해, 그 대단한 회의까지 개최하는 서울을 방문하는데, 어찌 더럽게 냄새를 풍길 수 있느냐는 논리였다.

2010년 11월 G20 서울 정상회담 당시 문제의 포스터 '쥐 그림'. 이 낙서를 남긴 대학강사에 대해 당시 검찰은 징역 10개월을 구형, 최종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게 실화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그렇다. 실화다. G20 서울 정상회담 당시 정말 정부와 서울시는 대단했다. 당시 공식 정상회담 기간 동안 서울시민들이 자주 찾는 대규모 상권이기도 한 코엑스와 삼성역 일대 통행 시 시민들은 검문·검색을 당했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도, 그 근처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해도 소용 없었다.

코엑스 주변은 높이 2.2m, 길이 750m 펜스가 설치되고 '접근금지' 문구가 붙었다. 그 주변 감나무에서 곧 까치밥이 될 감들이 혹시 떨어질까봐, 그래서 거리가 물러터진 감들로 더럽혀질까봐 철사로 일일이 감들을 묶어놓기까지 했다.

G20 에티켓 안내서는 어땠나. 외국인들을 보면 겁내지말고 '헬로'라고 말하라고, 시민들에게 친절히 충고했다. 2010년을 사는 세계 최고 IT 강국 국민들 입장에선 지금이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중인지 헷갈릴 주문이다. 그뿐인가. 서울시내 승용차 운행 30% 줄이기라는 대대적 캠페인이 벌어지고 택시기사들은 복장단속도 겪었다. 정상회담장 화장실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보여주기 위해 급수조에 금붕어를 키워 과시할 정도였으니···.

아직 안 끝났다. G20 정상회담 소동의 절정이 '포스터 사건'이다. 한 대학강사가 강남 일대 G20 홍보 포스터 22장에 그 유명한 '쥐 그림' 낙서를 남겼다가 무려 200만원의 벌금을 맞았다. 이 낙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가 담당했고 검찰은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그 대학강사는 낙서 한 번 했다가 진짜 징역살이 할 뻔했다. 벌금인 게 그나마 다행이란 얘기다.

재판부 판결이 지금 보면 명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이지만 무제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공공물인 G20 포스터에 낙서한 것은 예술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넘어 형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정당화될 수 없다."

탈북단체들의 대북전단(삐라) 살포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그 행위가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라고, 지금 보수 야당이 말한다. 피식 웃음이 난다. MB정부는 정상회담을 위해 서울시민들이 용변을 볼 자유까지 희생시킬 태세였다. 하필 정상회담 기간 중 정화조가 넘치더라도, 하필 삼성역 근처에서 '급' 마렵더라도 알아서 참으라고 말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록한 미래통합당 소속 의원들은 삐라 살포를 "헌법상 표현의 자유"라고 열심히 옹호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그렇다. 시민들이 편안히 용변을 볼 자유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자 천부인권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G20 정상회담 당시에도 의원 신분이었다. 당시 여당 한나라당이 지금 미래통합당이다.

탈북단체들의 표현의 자유가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권, 그리고 대한민국의 군사적 안보 자체만큼이나 중요한가. 물론 그렇다고 말할 순 있다. 정치적 신념이 그렇다면 그 자체로 존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G20 당시에는 시민들이 겪은 기본권 침해에 침묵했나. 왜 시민들이 겪은 모멸감에 대해선 외면했나.

한나라당과 그 이후 새누리당, 그리고 지금 미래통합당의 행보가 정말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헌법적 권리를 옹호한 쪽이었나. 아니면 본인들과 정치적 색채가 일치하는 쪽만을 옹하한 것이었나. 대북전단을 둘러싼 논란이 그저 정쟁으로만 치부되기엔 그 사안이 너무나도 엄중하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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