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죽을 때까지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작품 쓸 것”

“자전 ‘수인’ 출간 후 막막함 부딪혀 집필실 변화 줬다…다음 작품은 철학동화”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작가는 은퇴 시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써야합니다. 그게 작가가 세상에 대해서 가지는 책무예요.”

황석영 작가는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집필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창비]

그는 “글을 마구 쓰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얘기를 갖고 새로운 작품을 써내야 된다”며 “그게 안 되면 솔직하게 ‘더 이상 못 쓰겠다’ 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황 작가는 “‘해질 무렵’ 이후 5년 만에 장편소설을 끝마쳤다”며 “사실은 2017년 초에 ‘수인’이라는 자전을 출판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때 자전을 쓰고 나니까 간·쓸개 등 내장이 떨어져나간 것 같더라”며 “그리고 ‘이제 할 만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막막해졌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또 “작가들이 집필실 변화에 대한 의욕이 굉장히 많은데 나도 ‘장길산’을 쓰는 동안 19번을 옮겨 다녔다”며 “자전을 쓰고 나서 막막함에 부딪힌 뒤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 보따리를 싸서 나왔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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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으로 자택을 옮긴 황 작가는 “젊을 때처럼 하루에 8~10시간 매달려 앉아서 이 작품을 썼다”며 “확실히 기운이 달리고 기억력도 떨어지니 주인공 이름들을 혼동하기도 하고 대단히 고생을 했다”고 집필 과정의 고충을 전했다.

아울러 “내가 감옥에 갔다 와서 쓴 글들을 후반기 문학이라고 하는데 전반기 문학에서 리얼리즘을 확장해서 쓰려고 노력한다”며 “무속굿·설화·민담 등 원래 갖고 있던 서사나 형식을 차용해서 쓰면서 리얼리즘을 확장하는 식으로 쓰고 있다”고 방식에 대한 설명도 보탰다.

이어 “당시의 사실적인 자료들이 많이 있으니까 민담적 상상력을 방해하는 점은 있지만 조금씩만 얘기조로 풀면 자연스럽게 민담화된다는 걸 발견했다”며 “이 소설은 민담의 형식을 빌려서 쓴 작품이 되겠다”고 밝혔다.

황 작가는 “한국문학에서 산업노동자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이 거의 없다”며 “식민지 시대에 막 산업화가 되면서 노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항일운동과 같이 섞여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계급운동의 성격도 있지만 민족해방이라는 항일운동도 섞여있다. 이게 이념적으로 보니까 사회주의운동”이라며 “러시아혁명 이후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노동운동은 대부분이 사회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전쟁과 군사정부의 개발독재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이념적으로 터부가 된 것”이라며 “공장노동자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또 “천만 노동자 시대에 산업노동자를 다룬 장편소설이 한국문학에서 빠져있다는 게 굉장히 놀라운 점”이라며 “중요한 부분인데 빠트린 만큼 이 소설로 채워 넣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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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는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실감나게 다룬다. 사료와 옛이야기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구현해냈다. 구상부터 집필까지 30년이 걸린 작가 필생의 역작이기도 하다.

이백만·이일철·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아파트 16층 높이의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이진오는 페트병 5개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붙여주고 그들에게 말을 걸며 굴뚝 위의 시간을 견딘다.

황 작가는 “굴뚝이 지상과 하늘의 중간지점에 있지 않나. 이진오의 일상이 거기에 멈춰있으니까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요소”라며 “이 인물을 통해서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삼대 얘기를 들락날락하면서 회상하고 생각하는 식으로 이 소설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식민지 근대의 시작을 염상섭에다 두고 있다. 염상섭의 ‘삼대’가 식민지 부르주아의 삼대를 통해서 근대를 조명해낸 소설이라면 나는 그 뒤를 이었다”며 “다만 나는 산업노동자 다뤘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황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철학동화를 쓸까 한다”며 “운명적으로 늘 시대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같이 가는 편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작품 활동을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가 전세계에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가 변하고 있다”며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사람들이 이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마치 코로나19 사태가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지구상에 만들어냈던 자본주의 체제와 현재의 모습들에 대해 ‘여태까지 우리가 잘해온 건가’ ‘이 길로 온 것이 잘해온 것인가’ 등을 우리한테 질문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을 예측해보면 탈인간중심주의, 생태와 전 지구상에 있는 여러 가지 생물과 무생물, 우주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철학·사상·생각이 앞으로는 중요할 것 같다”며 “지방에서 공부를 좀 하려고 한다”고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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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황 작가는 이날 행사에 앞서 지난달 28일 예정했던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전날 5·18민주화운동 관련 행사를 했는데 당시 20대 청년이던 친구들이 60대 중반이 됐더라”며 “그들과 막걸리를 한잔했다. 조선술이 은근과 끈기가 세서 술이 안 깼다”고 말했다.

이어 “잘 때 분명히 탁상시계 알람을 맞춰놨는데 세팅을 안 하고 그냥 잤다. 11시쯤에 창비에서 난리가 났다”며 “현지에서 누군가 와서 문을 두드려서 그제서야 일어났다. 대형사고를 쳐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박은희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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