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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기업=사회악' 프레임에 갇힌 정부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러다가 사업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것 같네요. 정부 규제, 대기업 역차별 때문에도 힘든데 갑자기 '코로나19'까지 터져서 살 길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얼마 전 만난 한 대기업 유통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급감하자 한숨을 쉬며 이 같이 토로했다. 또 '코로나19'로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데, 정부가 모두 중소기업에 한해서만 지원책을 내놓는 것에 대해서도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면세점 전경 [사진=아이뉴스24 DB]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면세점 전경 [사진=아이뉴스24 DB]

경기 악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유통업체들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생사기로'에 놓였다. 백화점 방문객 수는 급감해 사상 유례 없는 바닥을 찍었고, 대형마트와 슈퍼는 이커머스에 밀려 적자 행진을 벌인 지 오래됐다.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면세점들도 불과 한 달여 만에 사상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던 중국인뿐만 아니라 하늘 길이 막히면서 국내 출국자들도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도 정부는 대기업을 위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 입점한 면세업체들의 임대료 문제가 대표적이다. 여행객 감소로 대기업 면세점들의 피해가 더 한데, 임대료 감면 혜택은 고작 공항 전체 임대 수익의 1~2%만 차지하는 소수 중소기업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심지어 임대료 감면 혜택 대상 중에는 일본계 기업도 포함됐다.

이는 면세점 임대료 덕분에 15년 연속 흑자행진에 '영업이익 1조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자기 배만 불리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얄팍한 노림수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임대 수익에 영향이 없는 중소기업 임대료 인하 혜택을 앞세워 '상생' 이미지만 덧입히려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태국공항공사가 '코로나19' 여파로 구분없이 임대료 감면에 나선 것과 비교하면, '전 세계 매출액 1위'라고 자부하는 인천공항의 사려깊지 않은 임대료 감면책은 명성에 누가 된 듯 하다.

대형마트도 정부의 규제 역차별을 받고 있는 대표적 업태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이커머스와 달리 대형마트들은 의무휴업일 규제, 출점 규제, 영업 시간 외 온라인 배송 규제 등으로 매출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생필품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덕분에 규제가 없는 이커머스 업체들만 신났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점포 방문객 수가 급감한 데다 확진자가 다녀간 점포들이 줄줄이 임시 폐쇄 조치되면서 매출 손실은 내부에서 산정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이커머스 업체는 규제하지 않으면서 의무휴업일에, 영업시간 외 온라인쇼핑 영업마저 제한하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대형마트의 이 같은 입장은 소비자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소비자는 "대형마트가 쉬면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한다"며 "정부가 시장 상권을 살리겠다고 민간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커머스 중심으로 유통 환경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만 강한 제재를 한다는 것은 시장 논리에도 맞지 않다. 일각에서는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2012년에 도입한 '유통산업발전법'이 결국 외국계 중심인 이커머스에 날개만 달아준 꼴이라고 폄하했다.

이 같은 정부의 대기업 역차별 규제들이 만연하면서 유통업체들의 체질은 상당히 약화됐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맞게 되면서 사업 지속 여부도 불투명 해 졌다.

결국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일자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자리 창출에 힘쓰던 업체들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롯데쇼핑은 3~5년 내 롯데마트와 슈퍼, 하이마트, 백화점 등 200여 개 비효율 점포를 정리하며, 이마트는 수익성이 악화된 마트 점포와 전문점 59개 점포를 폐점하는 등 사업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업계에선 이 여파로 롯데에서만 총 5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의 '대기업=사회악' 프레임에 맞춰진 역차별 규제는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더 강해지는 모양새다. 대기업이 한시적으로 규제 철회나 임대료 감면을 요구해도 표심에 누가 될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여야 간 줄줄이 내놓는 공약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위주다. 대기업은 쏙 빠져있다.

대기업의 뼈대가 튼튼해야 파생되는 민생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대기업만 옥죄면서 경제가 살아나길 바라는 것은 큰 오판이다.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바라면서 대기업이 요구하는 사항은 들어주지 않는 '표리부동' 한 정부의 움직임은 내수 경기를 더 얼어붙게 만드는 요인이다. 대기업에게 온갖 갑질을 벌인 정부가 이젠 반성하는 태도와 함께 '경제 살리기'에 초점을 두고 대기업과 함께 진정한 '상생'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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