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찬란했던 전설"…'왕조' 해태 타이거즈 19년의 기록


[아이뉴스24 정상호 기자]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왕조' 해태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 9번 우승, 승률 100%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고 그야말로 전설이 된다.

13일 방송되는 KBS 모던코리아 제5편 '왕조'는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 슬프지만 찬란했던 해태 타이거즈 19년의 기록이다.

모던코리아 '왕조' [KBS ]

◆ 리그에서 가장 가난했던 '호남' 대표 구단

1981년 제5공화국이 출범한 이듬해 각 지역을 연고로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마지막까지 후원하겠다는 대기업이 없었던 호남. 결국 제과 업체가 맡아 해태 타이거즈를 창단했다. 창단 멤버는 고작 15명. 타자로 입단한 김성한은 프로야구 첫해 선발투수와 타자 투 잡을 뛰며 10승, 3할에 타점왕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가장 소외된 지역을 연고로, 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팀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가난은 해태 타이거즈의 대표 정신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일당백', '헝그리 정신'으로 중무장한 해태 타이거즈는 프로야구사에 무서운 돌풍을 일으켰다.

모던코리아 '왕조' 해태 타이거즈 [KBS ]

◆ 가장 약한 자들의 영웅

1983년 김응용 감독이 부임한 첫해, 해태 타이거즈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다. 기적 같은 우승 이후 해태 타이거즈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지금도 깨지지 않는 전설적인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 '해태 왕조 시대'를 열었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 살아야 했던 광주 사람들에게 야구는 야구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야구장은 유일한 분출구였다. 그래서였을까. 창단 이후 무려 18년 동안 해태 타이거즈는 5월 18일에 광주에서 경기를 치를 수 없었다. 그날만큼은 선수들도 지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경기에 임했다고. 해태 타이거즈가 승리하면 울려 퍼졌던 '목포의 눈물'. 광주 사람들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 가장 슬픈 응원가를 불렀다. 마치 이 노래가 그들의 한을 달래주는 씻김굿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모던코리아 '왕조' 해태 타이거즈 [KBS ]

◆ 해태 왕조 19년을 추억하며

해태 타이거즈 19년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였다. 명장 김응용 감독과 김봉연, 김성한, 김일권, 국보급 투수 선동열 등 최고의 선수가 일군 80년대 해태 왕조는 90년대 이순철, 이종범으로 이어졌다. 1997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9번째 승리를 거뒀고, 그해 12월 호남의 김대중 대통령은 정권 교체를 달성했다.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의 영광은 1997년이 마지막이었다. IMF 직격타를 맞은 해태는 경영난에 선동열, 이종범, 그리고 김응용 감독을 차례로 떠나보내야 했고, 결국 공개 매각에 들어갔다. 2001년 해태는 역사로 남았고, 호랑이의 주인은 바뀌었다. 그렇게 '해태' 타이거즈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뜨겁게 열광했던 해태 왕조는 모두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제5편 '왕조'는 13일 목요일 밤 10시 KBS1에서 방송된다.

정상호기자 uma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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