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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본에 닿아야 할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일본 정부에서도 과거 식민지 시대 때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자기네들이 했다, 미안하다, 용서해 주세요, 우리 위안부 피해자들 모아놓고 그렇게만 하면 우리들도 어떻게 하겠어요. 용서할 수 밖에 없다고. 그런데 일본에서는 무조건 자기들이 안 했다, 한국 사람들이 했다, 이제 와서는 모른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난 주말 극장에서 본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에서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 활동가인 고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일본 대사관 앞에서 기자들을 앞에 두고 한 말이다.

영화 '김복동' 스틸컷. [사진=네이버영화]
영화 '김복동' 스틸컷. [사진=네이버영화]

강제징용 판결에서 시작된 일본과의 외교 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이 먼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역사적 분쟁을 현실 경제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갔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강경 대응에 나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갈등이 깊어질수록 일본 사회 깊숙히 뿌리박혀 있는 '혐한'도 고개를 세우고 있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직후 전현직 서울 특파원 일본인 기자들이 과거 한국 내에서 일본 불매운동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얼마 가지 못했다며 한국인들은 결국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오랫동안 하지 못할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극우 언론은 '한국은 약소국이니 불매운동을 해봤자 소용없다'며 조롱했다.

'혐한'을 부채질한 것은 불매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유니클로도, 아사히 맥주도 아닌 화장품 제조사 DHC였다. 판매는 한국에서, '혐한'은 일본에서 하는 '투 트랙 전략'을 전개하다가 자회사 DHC테레비의 혐한 방송이 덜미를 잡혔다. 결국 DHC코리아 사장은 공개 사죄까지 했지만, DHC 본사는 이에 대해 "DHC 한국 지사장이 멋대로 사과했다"라거나 "한국이 없어도 곤란한 나라는 없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DHC테레비는 DHC코리아 공개 사과 이후에도 혐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DHC테레비 방송화면 캡처]
DHC테레비는 DHC코리아 공개 사과 이후에도 혐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DHC테레비 방송화면 캡처]

더욱 무서운 것은 미래다.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나 강제징용 피해자는 대부분 80대를 넘어선 고령자로 머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또 일본의 미래 세대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갈등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있지 않다. 시간이 더 흐른다면 한국이 일본에 제시할 과거에 대한 증거는 '증언' 정도밖에 남지 않을 것이고, 일본은 한국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배상하라고 소리지르는 이상한 나라'로 여기게될지도 모른다.

1970년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추념비에서 참회의 무릎을 꿇었다. 당시 이를 중계한 헝가리 뉴스 캐스터는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으며, 그의 행동에 감동을 받은 폴란드 총리는 다음 행선지로 가는 차 안에서 브란트를 안고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1945년 이후 지금까지의 일본은 그 어떤 지도자도 '유감' 이상의 의사 표명을 하지 않았으며, 이제는 역사 왜곡을 통해 자신들의 치부를 커튼 뒤편으로 치워버리려 하고 있다.

'브란트의 무릎꿇기'는 전후 독일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사진=아이뉴스24 DB]
'브란트의 무릎꿇기'는 전후 독일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일본에게 20세기의 전반부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잃어버린 '영광의 시대'일까, 아니면 '감추고 싶은 치부'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판'이 깔려 있는 지금 반드시 일본과의 과거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

비록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불매운동 혹은 일본의 자정 작용을 기대하는 것뿐이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일본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무시하고 있는 '김복동'들의 눈물을 직접 바라보고 어떤 말이라도 하게 해야 한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더 이상 우리나라가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이 시국 정부가 이 같은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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