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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반성이 이기심으로 비치는 이유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배우 안재욱이 자숙 5개월 만에 ‘미저리’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그가 출연을 확정하고 알린 건 그보다 두 달 전이기에 너무 이른 복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재욱은 지난 2월 9일 밤 지방 일정을 마치고 숙소 옆 식당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신 후 다음날 오전 서울로 향하던 중 톨게이트 음주단속에 적발됐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96%로 측정돼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로 인해 출연 중이던 뮤지컬 ‘광화문 연가’와 개막을 앞둔 뮤지컬 ‘영웅’ 10주년 기념공연에서 하차했다.

사건 발생 후 그의 첫 번째 공식일정은 연극 ‘미저리’가 아니었다. 4월 초 일본 오사카에서 팬미팅을 진행해 실질적인 복귀는 2개월 만인 것이다.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달여 주어졌으나 그 피해를 감당하긴 싫고 국내가 아닌 해외인 점을 감안해 강행한 것으로 판단돼 당시에도 비난의 목소리는 높았다.

간밤의 숙취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아도 음주운전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준 사례로 일각에선 안재욱을 안타깝게 여기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작품에서 하차하며 스스로 반성할 시간을 갖기로 한 안재욱의 초고속 복귀에 그들마저도 등을 돌렸다. 음주운전을 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대중이 더욱 날카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16일 안재욱은 연극 ‘미저리’ 프레스콜로 공식석상에 섰다. 시연 후 이어진 간담회에서 직접 나서 빠른 복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입장과 자숙기간 느낀 점 등을 얘기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질문이 주어질 때까지 얌전히 앉아있었다. 기자들의 무관심으로 간담회 내내 질문이 가지 않았다면 ‘연기로 보답하겠다’는 마음속 다짐만으로 복귀를 정당화했으려나.

안재욱은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준비해 온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많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을 했었다”며 “근데 내가 연기 외에는 달리 할 줄 아는 재주가 없더라”고 운을 뗐다.

이어 “마치 숨어있는 것처럼 피해있는 걸로만 하루하루 임하면 답이 없을 것 같아서 이른 감이 없지 않느냐는 질타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또다시 최선을 다하면서 보답을 하기로 했다”고 의지를 밝혔다.

그는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한들 배우는 올라설 수 없는 무대가 없다면 끝이지 않나”며 “이번에 주어진 기회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연습 때부터 집중하면서 꽤 준비를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진지하게 입장을 밝히는 가운데 어색함을 떨치려는 듯 “농담 삼아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많이 연습을 했다고. 아무리 자숙기간이지만 너무 매일 부르더라”며 자조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명쾌하지 않은 답변이었다. 그래서인지 “지난 사건으로 인해서 민폐 아닌 민폐를 끼치면서 두 작품에 빠졌는데 이번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부담감·책임감을 얘기해 달라”는 두 번째 질문이 던져졌다.

안재욱은 “기존 계획돼있던 작품, 진행하려고 했던 작품에서 하차를 하면서 나 하나가 빠져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진행을 계속 하고 있는 컴퍼니 측과 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7~8월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영웅’ 공연도 하차하게 된 마당에 또 다른 극장에서 이 작품을 올려도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답했다.

그는 “이게 변명 아닌 답변이 될진 모르겠지만 오히려 함께 하기로 했던 팀들이 더 많이 응원해주고 격려도 해줬다”며 “‘미저리’를 통해서 기회를 주신 그룹에이트, 황인뢰 연출님이 응원을 많이 해주시니까 감히 그 힘을 등에 업고 한다는 명분으로 서긴 하는데 내 무거운 마음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어법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는 “내가 그냥 야인으로 사는 게 아닌 이상은 어떤 방법이 됐든 어떤 모습이 됐든 지금까지보다 나은 성실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배우로서는 내가 받은 사랑을 그 일이 아니어도 돌려드려야 된다고 늘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생각이 짧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 일도 안하고 있으면서 마음만 간직한다는 건 내가 어떤 돌파구를 찾을 엄두가 안 나더라”며 “누군가에게는 미워보이고 용서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은 응원이라도 힘이 된다면 발판삼아서 더욱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서 비난과 질타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용기 아닌 용기를 내봤다”고 설명했다.

또 “내 일이 배우라는 것 때문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는 점 이해해주고 내가 더욱더 깊이 생각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겠다”고 당부와 각오를 보탰다.

진중한 답변이지만 이렇게 빨리 대중 앞에 서야 했는지에 대한 설득력은 없다. 이번 작품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연기로 관객과 소통하는 게 스타로서 사랑받은 데 대한 최선의 보답일까? 자숙과 숨어 지내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의미다. 대중에게 잊힐 것 같은 불안감과 조바심에 행한 그의 섣부른 행동이 주던 사랑조차 거두게 한 꼴이다.

비판과 질타의 목소리는 작은 응원으로 덮일 만큼 사소하지 않다. 쓴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진실됨을 보여주는 게 진정한 좋은 모습이다. ‘관람료를 지불하고 연극을 보는 관객과 떳떳하게 연기로 소통할 수 있을 때쯤 무대에 올랐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과 자숙의 깊이가 비례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번 복귀는 그의 반성의 깊이를 오해하게 할 만큼 참 가볍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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