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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어나더 컨트리’ 이동하·연준석 “가이베넷, 연민 느껴져 안아주고 싶어”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줄리안 미첼 원작의 영국 웨스트엔드 연극 ‘어나더 컨트리’가 37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올랐다. 1982년 연극으로 선보인 뒤 1984년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한 작품으로 배우 콜린 퍼스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연극에서 ‘가이 베넷’을 연기한 콜린 퍼스는 영화에서 ‘토미 저드’ 역을 맡아 촬영 후 다시 연극 무대에서 가이 베넷으로 분했다.

한국 초연 무대에서는 이동하·연준석·박은석이 가이 베넷 역으로 낙점됐다. 이동하와 박은석은 제작사의 러브콜로, 연준석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서다.

‘어나더 컨트리’는 1930년대 상류층 자제들만 모인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를 배경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가이 베넷과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단아 토미 저드 두 청년의 이상과 꿈, 좌절을 그린다.

가이 베넷은 실존 인물인 가이 버제스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권위주의에 물든 제도와 인간의 존엄을 상실한 학교 시스템에 저항하고자 하는 진보적 청년이며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자유분방함을 지녔다.

같은 배역을 각자의 표현 방식으로 연기하며 무대에서 각기 다른 가이 베넷으로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이동하와 연준석을 지난 5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초연인 이 작품이 내 인생의 초연”이라는 연준석은 연극배우로서 첫 공연을 마친 후 “너무 정신없이 마무리한 것 같다”고 덤덤하게 소감을 밝혔다. 연준석이 “계속 연습해오던 것을 무대에서 하는 거였으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긴장되진 않았다”고 하자 이동하는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개막 전까지 2개월여 동안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끊임없이 공유해왔기에 짧은 기간에 두 배우는 부쩍 친해졌다. 이들은 “둘 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고 띠동갑의 나이차가 있지만 성향이 잘 맞아 대화가 잘 통했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배우 이동하·연준석과의 일문일답.

-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데 또래의 신인 친구들과 함께 시작해 혼자 덩그러니 낯선 현장에 적응하는 것보다 어쩌면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연준석 “그렇다. 낯을 많이 가리고 마음 여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이미 알던 분들이 팀에 계셔서 많은 도움이 됐다. 문유강(토미 저드 역)과도 엄청 친한데 유강이가 사실 제일 큰 힘이 됐다. 동하 형에게도 많이 감사하다.”

- 국내에서는 영화로 잘 알려진 작품인데 이번 연극이 영화와 다른 점을 짚어 달라.

이동하 “준석이도 나도 영화를 봤다. 연극적인 걸 영화로 옮기면 아무래도 연극처럼 활동적으로 풍성하게 할 순 없지 않나. 오히려 영화는 굉장히 정적인 것 같다. 지금 하는 이 버전의 연극은 영국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보여주는 거라 우리 정서를 가미해 수정·보완했다. 영화는 영국의 기숙사 애들을 실제로 옮겨놓은 느낌이고, 우리도 물론 그런 느낌이 있겠지만 10대 감성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는 느낌이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연준석 “나는 테크닉적으로 캐릭터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서 뛰어나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연습 때도 그랬고 극장 들어가면서도 가이 베넷을 연기하다 보면 뭔가 아픔이 느껴지고 자연스럽게 그 감정들이 와닿는 지점들이 있다. 그 지점들에서 계속 감정들을 똑같이 받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이 베넷은 어쨌든 어린 아이다. 그 여린 부분이 와닿는 것 같다. 연민 같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동하 “나도 비슷하다. 이 친구가 기숙사 내에서 많은 동성 친구들이랑 여러 관계를 했지만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마지막에 자기의 정체성을 깨닫고 굉장히 혼란스러워 한다. 그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되게 본능적이고 준석이가 말한 것처럼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지점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지점에서 순수하고 깨끗하다. 물론 행동은 안 그랬지만, 나한테 굉장히 본능적이고 순수한 매력으로 확 다가오더라. 가면을 쓰고 항상 장난을 치곤 하지만 내면은 여리고 순수한 아이다. 진짜 뭔가를 찾고 싶어서 그러다가 결국 깨닫게 되는 과정들이 아프다. 어렸을 때부터 얘가 어떻게 자라왔고, 아버지·엄마에 대해서 어떤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로 인한 상처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떤 상처인지도 많이 고민을 해봤다. ‘결핍이나 갈망이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안아주고 싶고. 그게 매력인 것 같다.”

-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배우가 다른 만큼 세 배우 모두 다른 분위기의 ‘가이 베넷’을 만들어낸다. 서로의 매력을 얘기해 달라.

이동하 “준석이한테도 연습실에서 한번 얘기한 적 있는데 얘는 장난으로 ‘형, 뭐’ 이러지만 (연준석이) 사실 선배다. 데뷔한 지 15년 되셨다. 무대 연기는 내가 선배지만 연기자로서는 선배님이시다. 그래서 준석이의 연기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하지?’ 싶더라. 뭔가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니까 진짜 소름끼친다. 준석이가 본능적인 게 있는 것 같다. 본능적으로 순간순간 느껴서 하는 그런 지점이 가이 베넷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지금도 엄청난 배우지만 정말 큰 배우가 될 것 같다. 내가 많이 배우고 준석이 통해서 ‘그래, 가이 베넷이라면 저래야지’ 하는 부분도 있다. ‘맞아, 나도 저렇게 생각했는데 저걸 무대에서 본능적으로 표현하는구나’ 그런 면들이 되게 좋았다.”

연준석 “은석이 형도 그렇고 동하 형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셋이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다 보니까 서로에 대해서 신선함이나 새로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 같다. 나는 동하 형을 보면 몸짓이나 제스처, 사소한 몸 움직임과 쓰임이 되게 우아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항상 놀란다. 그런 생각을 연습 초반부터 계속 하다가 알고보니 형이 태생이 이탈리아더라. 그 얘길 듣고서 ‘그래서 진짜로 그게..’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건 또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고.(웃음) 암튼 되게 우아함이 있다.”

- 특히 힘든 장면은 없나.

연준석 “토미 저드도 그렇지만 가이 베넷은 시작부터 많이 나오기 때문에 흐름을 타서 계속 쌓아가니까 힘든 장면은 없다. 그런데 1막1장 시작할 때 그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동하 “그때 베넷이 이 분위기를 잡아주지 않으면 나중에 갔을 때 흐름이 마가 뜨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첫 신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이동하 “동선이나 나오는 타이밍, 음악 큐, 외부에서 나오는 목소리 등이 많이 수정이 됐다. 일단 기자 목소리가 남자로 바뀌었다. 시간 때문에 언제 옷을 입고 벗는 게 괜찮은지도 다시 체크했다. 마지막에 가이 베넷이 회상하면서 나가는데 처음엔 그냥 가만히 있다가 나가면 바로 암전돼서 다른 조명으로 바뀌었다. 이건 아련함과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모습을 더 보여주기 위해 조명을 천천히 음악이랑 맞췄다. 음악의 경우 처음엔 솔로로 부르는 게 있었는데 다같이 부르는 게 느낌이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수정했다.”

- 하코트(가이 베넷이 사랑하는 롱포드 기숙사 소속의 학교 최고 미소년)의 태도도 다르던데.

이동하 “하코트가 잠깐잠깐 나오지 않나. 원래 쌀쌀맞고 짝사랑 같은 느낌이었는데 베넷이 나중에 하코트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게 설명되기 너무 부족한 시간이라 ‘그 안에서 좀 더 깊이있고 밀도있게 좋아하는 것으로 가보자’ 해서 바꿨다. 짝사랑 같을 때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는데 그것 보다는 오히려 가이 베넷의 감정 흐름에 맞게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서 연출님이 내린 결정이다.”

- 개막한 지 보름이 지났다. 무대 위에서 발생한 실수담을 고백해보자.

이동하 “나는 실수가 많아서.(웃음) 얼마 전 두 번째 공연을 할 때, 낮 공연에 이어 저녁 공연에 들어갔는데 쌍안경이 없더라. 하코트를 봐야하는 상황인데 순간 되게 고민을 했다. ‘안에 들어가서 가져올까’ 했는데 그러면 마가 뜨고 흐름이 깨질까봐 ‘그냥 멀리 보는 걸로 하자’ 그랬다. 다행히 그렇게 해서 잘 넘어갔다. 깜짝 놀랐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싶더라. 유강이랑 배훈(데비니쉬 역)도 쌍안경이 없는 걸 알고 나처럼 멀리 보는 동작으로 하더라. 롱포드 기숙사가 생각보다 가까운 걸로 설정이 돼버렸다.”

연준석 “나도 소품 실수가 있었다. 쪽지랑 동전을 옷에 넣어놨어야 되는데 깜박했다. 동전을 넣어놓으면 그 장면 나와서 돌아다닐 때 짤랑짤랑 소리가 나야되는데 소리가 안날 때부터 ‘아! 이거 어떡하지’ 했다. 다행히 작으니까 넘어갈 수 있을지 알고 있는 척했다. 쪽지는 손에 꽉 쥐고 전변현(워튼 역) 주머니에 넣어주는 척하고 동전 줄 때는 현이가 뒤돌아서 몰래 받는 척했다. 현이가 잘 받아줬는데 다 티가 났더라.”

- 이번 작품이 전 배역 공개 오디션을 통한 신예 발굴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공연 기획·제작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견해를 말하자면.

이동하 “너무 좋은 것 같다. 새로운 얼굴들이 나온다는 자체가 되게 신선하고, 그로 인해 좋은 배우가 나온다면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항상 똑같은 배우가 나오거나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익숙함에 젖을 수도 있다. 배우가 더 많이 나와야지 공연도 다양하고 활발해진다. 에너지도 더 많이 생길 테고. 이 같은 발굴 시스템으로 실력 있는 신인이 많이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박은희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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