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에너지 속국 자초하는 일?

'통화스와프'와 같은 개념…李·朴 정부 때도 이미 추진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공세가 다시 강화되고 있다. 이번엔 '동북아 전력계통 연계사업' 일명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도마에 올랐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남북한과 한·중·일, 러시아를 잇는 전력망 연결사업이다.

이 슈퍼그리드가 졸속적인 탈원전 정책의 결과로 중국, 러시아로부터 전기를 수입하려는 것으로 에너지 주권의 심각한 침해가 예상된다는 게 공세의 핵심 포인트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에 7조~8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한국전력의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상황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정말 현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의 산물일까?

자유한국당 정용기 신임 정책위의장은 지난 13일 당 지도부 회의에서 "한국전력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전기 수입을 추진하려는 계획이 언론에 보도됐다. 졸속적인 탈원전 정책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이제 와서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하겠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현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슈퍼그리드는) 당사국들도 찬성하지 않을 일. 에너지 종속국으로 스스로 나서는, 정말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의 윤영석 수석대변인도 "전력 수입으로 인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지고, 상대국이 이를 무기로 삼는다면 그 타격은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우선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기본 개념부터 살펴보자. 산업통상자원부의 제8차 전력수급 계획에 따르면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한·중·일, 한·러 송전망 구축으로 시베리아, 몽골의 태양광과 풍력, 천연가스(LNG) 등 청정에너지를 동북아 국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계획이다. 주변국들과 예비전력을 공유해 각 국의 전력수급 우려를 해소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내년까지 슈퍼그리드 대상 각국 정부·민간과 협력채널을 구축하고 기술적 가능성과 장애요인 분석, 사업모델과 비용 검증 등 실무작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내후년 상반기까지 공동해양 조사와 자금조달 등 후속작업을 거쳐 2022년까지 일부 구간 착공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의 외부 용역을 통한 추산으로는 전력망 구축에 7조2천억~8조6천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중국 웨이하이~인천 370km 해저케이블 2조9천억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경기 북부까지 북한을 경유한 1천km 2조4천억원, 일본 기타큐슈 또는 마츠에~경남 고성 최장 460km 1조9천억~3조3천억원 등이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의 언급처럼 한 언론사가 한국전력의 이 보고서를 한국당 정유섭 의원실을 통해 입수, 보도하면서 정치권의 탈원전 논란을 재촉발시켰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북한발 리스크가 여전한 데다 중국,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속국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2011년 9월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제안한 개념이다. 그해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 퍼졌다. 손 회장은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는 한편으로 2조엔(20조원)을 투입, 총연장 2천km의 송전망으로 한국과 러시아를 연결해 전력을 공유하자는 구상을 발표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도 슈퍼그리드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정부가 한국과 러시아의 전력망 연계에 대한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전력 김중겸 전 사장도 재임 당시 손정의 회장과 전력망 연계를 논의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도 2014년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동아시아 전력망 연계방안'을 반영했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 북한을 관통하는 2~5기가와트(GW) 규모 1천km~1천200km의 전력망을 구축하자는 내용이다. 국내 전력설비의 효율적 이용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의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반영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슈퍼그리드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계통섬(연결이 이뤄지지 않은 지역)'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 과거 정부에서부터 추진해왔던 사업"이라며 "탈원전, 탈석탄 등 에너지 전환정책 때문에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추진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전력 수입이 이뤄지면 에너지 주권이 침해받을 가능성은 없을까. 전력망이 구축되면 예비전력의 수입과 함께 수출도 가능해진다. 국내 발전설비가 고스란히 가동되는 상황에서 전력수입이 이뤄져도 전체 전력수요의 2%가량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해외에선 프랑스 영국 독일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유럽 10개국이 2009년부터 슈퍼그리드를 추진 중이다. 2020년까지 북해에 40GW급 풍력발전 단지와 송전망을 구축, 참여국들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향후 2030년까지 150GW까지 발전 규모를 늘린다는 것이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그리드 체계를 만들어 상호 교환하는 거래방식은 무역의 기본이자 에너지 거래의 핵심"이라며 "(슈퍼그리드 구축이 에너지 속국화라면)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과 (금융통화 안정을 위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것도 금융 속국이 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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