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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한번볼래?]'미스 마, 복수의 여신'★★★★


김윤진 주연, 캐릭터 활용 빛난 추리극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딸이 유괴당했다. 납치범은 현금 10억 원을 요구했다. 유망한 신소재기업의 대표인 엄마(김윤진 분)는 야심한 시각 돈을 담은 가방을 가지고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유괴범을 마주할 겨를도 없이, 처참하게 살해된 딸의 모습을 발견했다. 여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오열했다.

그리고 경찰은 이 을씨년스러운 밤의 인면수심범으로 아이의 엄마를 지목했다. 납치된 날 아이가 탄 차가 엄마의 것이라는 점, 통화 상으로 확인된 범인의 행적과 엄마의 동선이 겹친다는 사실, 이혼을 준비 중이던 상황 속 아이는 아빠와 함께 살길 바랐고 엄마는 그런 아이를 체벌한 적이 있다는 정황, 차량 핸들 및 현장에서 발견된 엄마의 생체흔적 등이 수사 결과의 근거였다. 여자는 무죄를 주장했다. 범행 장소 인근에서 마주친 여성이 범인과 아이의 목격담을 들려주었다고 증언했지만, 귀신과 같은 목격자의 몽타주에 아무도 그의 진술을 믿지 않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여자는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치료감호소로 이감됐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이제 여자는 세상이 미친 것인지, 자신이 미친 것인지 도통 구분할 수조차 없다. 과거 자신의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찾아와 영화 '무녀'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영화에는 8년 전 사건 발생지 근처에서 자신에게 범인과 아이의 향방을 이야기해준 여성과 비슷한 행색을 한 배우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여자는 자신이 본 것이 귀신이 아니었다고,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감호소를 탈출해 딸을 죽인 범인에게 할 수 있는 한 가장 잔악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과거 명석한 두뇌와 치밀한 실행력을 자랑했던 여자는 1년 간 감호소 탈출을 계획했다. 조무사들의 교대 일정, 책임자의 인수인계 타이밍, 레크리에이션 스케줄을 파악해 디데이를 결정했다. 침대 시트를 찢어 꿰매며 탈출에 사용할 옷까지 만들었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SBS 특별기획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이하 '미스 마', 극본 박진우, 연출 민연홍·이정훈)은 여자의 탈출과 함께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과 외모가 흡사한 추리소설 작가 마지원(김윤진 분)의 존재는 이후 여자의 작전에 절대적 도움이 됐다. 차기작에 고민이 깊었던 마지원을 고급 별장에 데려다놓고, 여자는 마 작가의 이름을 빌려 복수를 위한 새 삶을 시작했다. 부촌 무지개마을로 이사한 그는 이웃들에게 '미스 마'라 불렸다. 감호소에 수감됐던 당시 인간 본성에 대한 책들을 독파했던 그는 진짜 추리소설가 못지 않은 탐구력과 추리력을 자랑하며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탈주범과 똑같은 얼굴로 인해 위기 역시 맞닥뜨리지만, 작가 마지원의 공인된 입지는 역설적으로 미스 마의 신원을 보장해줬다.

무지개 마을 정치의 중심인 마을문고의 선생들은 미스 마에게 크고 작은 고민들을 털어놨다. 처음엔 아이의 학원 가방이 없어진 이유, 도난당한 신용카드의 행방 같은 사사로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미스 마의 등장 후 마을은 떠들썩한 사건들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입밖에 내지 못할 비밀들을 품고 살았던 마을 사람들은 동화책 글자를 오려 붙인 익명의 협박 편지를 받았다. 그들 중 일부는 자살을 위장한 타살의 피해자가 됐다. 치정이 얽힌 연쇄 살인의 범인을 찾아내며 사건이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이번엔 왕년 인기 배우 이정희(윤해영 분)의 주변이 시끄럽다.

정체를 숨긴 채 마을에 살았던 이정희는 미스 마가 그토록 찾던 유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여러 이유로 지난 9년 간 연기 활동을 쉬었던 이정희는 유명 감독인 남편과 함께 연기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미스 마 역시 이정희를 통해 유괴 사건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이정희의 약점을 쥐고 돈을 뜯어내던 과거 스타일리스트 배희재(김선화 분)가 파티 자리에서 약물을 탄 술에 사망했고, 용의자 중 한 명으로 보였던 이정희 역시 촬영 현장에서 커피를 마시다 의식을 잃고 말았다.

지난 방송에서는 이같은 상황을 미스 마의 남편 장철민(송영규 뷴)이 보고받는 모습이 드러나 추리의 새 장이 열렸다. 과거 아내의 이혼 통보에 그가 드러냈던 찰나의 분노, 여자가 이혼을 요구한 사유가 남편의 폭력이었다는 사실은 그를 유괴 범행의 배후로 추측하게 만드는 단서다. 탈옥한 아내의 전화를 받고 그에게 경찰이 동석하고 있음을 알려주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자신의 범행 은닉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회를 거듭할수록 몰입을 높이는 '미스 마'는 딸을 잃고 누명을 쓴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비슷한 소재를 다룬 여타 사적 복수의 서사와는 궤를 달리 한다. 이같은 차이는 다름아닌 타이틀롤 미스 마가 지닌 캐릭터의 폭에서 연유한다.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동안 창밖을 구경한다는 구실로 꾸준히 운동을 한 미스 마는 탈옥 후 장정 한 명을 때려 눕힐 만한 체력을 갖게 됐다. 인간의 본성을 끈질기게 파고들며 공부한 덕에 사람의 심리와 행동 양식에 대한 넓은 지식과 직관도 얻었다. 주로 모성애로만 포장돼 온 '엄마의 사적 복수' 서사는 미스 마의 방대한 능력치를 만나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낳는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어 온 미스 마는 일에만 미쳐 살던 여성이었다. 사건 전의 미스 마는 '여성성'으로 분류돼 온 덕목들, '섬세함'이나 '연약함' '고분고분함' '다정함' 같은 것들과 완전히 분리된 인물이었다. 딸 민서를 향한 모성애를 그리는 방식도 색달랐다. 체벌에 대항하기 위해 경찰을 부른 딸을 두고 "나를 닮아 당돌하다"며 뿌듯해하던 모습은 그간 많은 미디어가 재현해 온 희생적인 모성과는 전혀 다른 형태다.

미스 마가 탈옥 후 무지개마을에 정착한 뒤에도 비슷한 맥락의 정서가 관찰된다. 파란만장한 며칠을 보내며 부모를 잃은 소년 우준(최승훈 분)을 향해 미스 마는 남다른 연민을 느낀다. 우준과의 만남을 통해 딸 민서의 환영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준과 미스 마 사이의 정서 역시 익숙한 유사 모자의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드라마는 우준을 향한 미스 마의 관심과 애정을 눈물겨운 신파로 포장하지 않는다. 비극을 맞이한 아이가 꿋꿋이 성장하길 바라며 냉철한 조언을 건네는 장면은 그 자체로 미스 마 답다. 전형성을 피한 선택이었다.

억울한 9년을 보낸 뒤, 미스 마는 사건 이전과 다른 표정들을 보이기도 한다. 그 변화는 '나와 같은 억울함을 겪는 사람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공감 능력에서 발현된다. '내 것'을 놓지 못하는, 때로 누군가에겐 한없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과거의 미스 마는 어둠의 시간을 보낸 뒤 세상을 더욱 넓게 포용하게 됐다. 누군가 누명을 쓰는 일에는 특히 과민하게 행동한다. 자신의 계획에 하나 도움되지 않을 사건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나선다.

조폭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웃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고말구(최광제 분)와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됐다. 홍선생(유지수 분)에 의해 도둑 누명을 썼던 고말구는 미스 마 덕에 사과를 받게 됐고, 이후 미스 마의 주변에서 조용한 조력자로 활약한다. 드라마는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고 이후 인생 최악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인물의 감정들을 결코 간단한 흐름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스스로 세상을 환기하게 된 주인공의 성장사가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여타 여성 캐릭터의 활용도 흥미롭다. 가장 인상적인 배역은 경찰 한태규(정웅인 분)와 함께 미스 마의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 양미희(김영아 분)다. 초임 시절 미스 마의 사건을 담당했고, 이후 사건이 재수사의 대상이 돼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진 않을지 불안해하는 인물이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검사장 후보로 거론될 만큼 능력 있는 검사이기도 하다. 양미희는 '쌍욕'에 거친 손버릇까지, 언행이 두루 거친 캐릭터. 형사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일관되게 폭력적이다. 남성 배역이 연기했다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을 캐릭터지만, 성별 반전만으로도 생경한 감흥을 준다. 선역이든 악역이든, 그간 권력의 얼굴이 얼마나 자주 남성의 것으로 표상돼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미스 마'는 매주 토요일 밤 9시 5분 방송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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