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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의 조선족과 사업 잘하기](5)情


 

'사업'과 '정(情)'이란 말은 웬지 어울리지 않는다. 사업에는 오히려 '매정하다'거나 '몰인정(沒人情)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물론 이런 생각은 사업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사업가는 보통 냉혈한이라는….

현실에서는 정이 많은 덕장(德將) 스타일의 사업가가 빛을 보는 경우도 꽤 많다. 정(情)이라는 것이 사업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특히 중국 조선족과 사업을 할 때 정(情)은 더 빛을 발하는 듯하다.

중국 하얼빈에서 개인 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A씨. 그는 1998년에 이곳에 진출했다가 철수한뒤 올해초 다시 진출했다. 현재 하얼빈 한인회(韓人會)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만큼 이 지역 한인사회에서 유명인이다.

그의 '중국 진출기'는 한마디로 '정(情) 스토리'이다.

전주고와 전북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A씨는 고시에 실패한 뒤, 전북대 앞에서 중국 음식점을 개업했다. 처음에 작게 시작했으나, 차차 커지기 시작하더니, 한때는 직원 수만 20여명에 달할 만큼 규모 있게 번창해갔다.

그럴 즈음 이 음식점에 조선족 B씨가 찾아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B씨는 밀입국자였고,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했다.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법이 없었고, 부족하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배우려고 애썼다. 한국인과 다른 정서도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에 속했다.

A씨는 그런 B씨에 대해 적잖은 정을 나누어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A씨가 B씨에게 특별히 많은 정을 주었다기보다, 그저 다른 직원과 차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B씨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배려였다. 그만큼 조선족은 한국 사회에서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차별 대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그런 당연한 차별을 하지 않은 것이다. B씨도 똑같은 직원으로 대했고, 다른 직원에 그런 것처럼 B씨의 어려움에도 귀기울였던 것이다.

B씨는 A씨의 그런 배려 속에서 착실히 돈을 모아 중국 선양(沈陽)으로 돌아가 인민폐로 25만 위안을 투자해서 음식점을 차렸다고 한다.

그 얼마 뒤 A씨 사업에 처음으로 적잖은 시련이 찾아온다.

IMF 환란 위기가 그것이다. 경기가 급속히 꺾이며 A씨의 사업도 점차 어려워진 것이다. A씨는 그 때 이러저러한 고민 끝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중국에 진출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 '대국의 기질'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중국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그로서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당시 그의 중국 진출을 도운 사람이 바로 B씨다. B씨는 98년말 만사를 제쳐놓고 A씨의 하얼빈 정착을 도왔다. 아파트를 얻고 가게를 마련하는 큰 일은 물론이거니와 길을 찾는 세세한 일까지 자기 일처럼 도와줬다.

A씨가 배푼 정(情)이 결초보은(結草報恩)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정으로 맺어진 이런 관계는 얼마든지 더 찾아볼 수 있다. 만난 기간이 길고 관계가 깊을수록 정도 진해 보인다.

칭다오에 있는 전자회사인 J사 K총경리와 S팀장.

K총경리는 한국인이고 S팀장은 조선족이다. K총경리는 비교적 점잖은 편이지만, 유독 S팀장에게는 '험한 소리'를 자주 하는 편이다. 그 스스로도 이를 인정한다. 모른 이가 옆에서 보기에는 닦달하는 모양이 심하다 할 정도.

그러나 그런 험한 소리에도 S팀장의 얼굴은 지나칠 정도로 밝다. 어찌 보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 관계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S는 우리 회사의 대들보지요. 제가 처음에 중국에 왔을 때 그를 만났으니 벌써 우리가 만난 지 7년이 넘었네요. 옆에서 보기에 좀 지나치다 싶겠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 둘 사이의 정(情)입니다. 우린 서로를 그만큼 믿고 있어요. 어느 한 쪽이 없으면 사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실제로 S팀장은 J사의 중국 내수 영업을 책임지고 있을 만큼 중요한 존재다. 중국인 신분으로 J사를 위해 중국의 대형 바이어 사이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것이다. S팀장의 경우 그렇게 7년 정도 노하우를 쌓았으면, 독자적으로 독립할 생각을 할 만도 하지만, K총경리와의 관계는 더 돈독하다.

그들은 직장의 상하 관계이면서, 혈연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다.

선양(沈陽)에 있는 삼보전뇌(삼보컴퓨터 중국 법인)의 이승갑 부총경리와 임영산 부총경리의 관계도 그렇게 보인다. 언뜻 보면 누가 조선족이고 누가 한국인지 알 방법이 없다. 모두 다 삼보전뇌의 핵심 관계자인 것이다.

한국인인 이승갑 부총경리나 조선족인 임영산 부총경리 모두 중국 법인이 설립됐던 99년부터 같이 일을 했으니, 설립 초기의 온갖 고생을 같이 겪어 왔을 게 뻔하다. 그러면서 식구 같은 정(情)으로 뭉쳐졌을 게 분명하다.

그들 또한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아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한국인인 이 부총경리는 재무나 회계를 맡고, 임 부총경리는 중국 현지인을 상대로 한 인사 노무 관리를 맡아 '환상의 궁합'이기도 하다.

결국 사업의 지속 기반이 정(情)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하는 사례들이다.

물론 정으로만 사업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정이 지나치다보면,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지 못해, 조직을 망가뜨리는 일조차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애써 정의 가치를 폄하할 일도 아니겠다. 그러다가, 인심을 잃어 사업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情)은 역지사지(易地思之)할 때만 나오는 것이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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