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성의 조선족과 사업잘하기] (4)술

 


중국 사업을 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무엇일까.

어디 중국 사업의 어려움이 하나 둘이겠는가 만은, 한국 기업의 중국 주재원 가운데 대부분은 아마도 '술'을 첫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한국에서 '고래'에 해당됐다고 자부하던 사람도 아마 예외는 아닐 것이다.

맥주 잔보다는 작지만, 소주잔의 3배 가량은 됨직한 큰 잔에, 40~50도를 오르내리는 독주(毒酒)인, 일명 '바이주'(白酒)를 가득 붓고, 쉴 새 없이 건바이(乾杯)를 외치는 중국인을 보면, 아예 기가 질리고 만다.

그것도 한국에서처럼 술 먹는 시간이 어디 정해져 있기나 한가. 만나면 술자리부터 벌어지고, 점심의 경우 거의 어김없을 때가 더 많으니, 특히나 술에 약한 중국의 주재원이라면 참으로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술에 대한 이런 중국인의 호기(浩氣)에, 오기가 생겨, 우리 식으로 맥주를 섞어 소위 '폭탄'으로 응수해보지만, 그것도 한두 번. 만나는 사람이 늘 바뀌고, 만나는 시각이 언제나 새롭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술 문화에 대한 오해도 많을 수밖에 없다.

지난 100여년 동안 대륙에서 풍찬(風餐)과 노숙(露宿)을 견뎌온 조선족 또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남달라, 술을 벗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만큼, '술에 대한 이해'는 중국 조선족과 사업을 벌일 때에도 '첫걸음'인 셈이다.

'로봇'으로 유명한 하얼빈공대의 H교수.

주위에 따르면 H교수는 술을 마셔야 강의를 더 잘 할 만큼 소문난 애주가다. 실제로 기자 또한 그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만남이어서 더 그랬다. 돌아보니 오로지 '술'만이 화두였다. 그 앞에서 '소인(小人)'이 되지 않으려면, 위가 거꾸로 뒤집어진다해도 퍼먹어야 할 정도다.

놀라운 것은 그가 칠순을 바라보는 고령이라는 점. 그러한데도 H교수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중국내 최고의 로봇 권위자다.

사실 H교수는 좀 과한 편이긴 하다. 그와 친분이 두터운 애주가도 술자리를 피할 정도라니, 오죽할까. 하지만, 끝없이 소모적일 것 같은 그 '술'과 함께 H교수의 권위가 꽃피어난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이보다 더 공식적인 상황에서도 '술'은 빠지지 않는다.

기자는 옌지(延吉)에 있는 공공관계협회 K부회장 소개로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정부 쟝셔오 뚱(姜曉東) 정보산업국장을 만난 일이 있다. 옌지의 IT 산업 현황과 발전방향을 취재하기 위한 자리였다. 물론 술로 이어졌다.

K부회장도 환갑을 넘긴 고령이었지만, "옌지의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쟝 국장과 이 기자가 친구가 돼야 한다"며 술자리를 주도했다. K 부회장은 "술 잔 속에 친구를 섞어 마셔라"며 주도(酒道)에 대해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런 얼마 뒤부터 쟝 국장의 술잔이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다 받아 마신 뒤에야, 우리는 나이를 따져, 10살 어린 기자가 '동생'이 되고, 쟝 국장은 '형'이 되었다. 또 그런 관계가 되었으니, 서로 신의를 버리지 말고, 앞으로 좋은 일만을 만들어가자는 게, 그 술의 의미였다.

현대적이고 인텔리적인 사업가 사이에서도 이런 풍경은 비슷하다.

칭다오에서 제조업을 운영하는 K사장. 그는 흑룡강신문 출신으로, 칭다오에 진출한 뒤, 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제조업체 사장이다.

K사장이 주재한 오찬. 평소 칭다오에서 만나는 지인 4명과 연대에서 온 조선족 기업가 한 명, 그리고 기자, 이렇게 6명이 점심을 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오찬을 주재한 K사장이 '주제 발언'을 하였다.

"반가운 손님이 2명이나 왔으니, 칭다오 주법(酒法)에 따른다"는 것이 '주제'였다. 그러고 보니 진짜 '주제(酒題)'였다. 법은 간단했다. 주재자가 먼저 주제를 발제한 뒤 석 잔의 건배를 제의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주재자의 맞은 편에 앉은 이가 똑같은 방식으로 석 잔의 건배를 제의한다. 그런 다음에는 손님 차례다. 또 나머지 사람도 똑같은 방식을 따르게 된다.

그러니 다 합치면 기본이 18잔에 이르는 셈이다. 오찬이고, 점잖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바이주가 아니고 맥주여서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술이 약한 기자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큰 고역이었다.

그런데, 어느 술자리든지 꼭 빠지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K부회장의 말처럼 "술잔 속에다 섞어 마시는 '친구'"라는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기자는 여기서부터 중국, 혹은 조선족의 술자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차피 주선(酒仙)이 아닐 바에야, 술은 상대가 있어 마신다. 또 상대를 더 잘 알고, 상대와 더 친해지기 위해서 먹는 게 술의 가치일 것이다.

그런 가치는 우리나 중국 조선족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예를 들면, 처음에 사람이 술을 마시다, 나중에는 술이 술을 마셔버리고, 그야말로 인사불성의 고주망태가 되는 상황도 없진 않겠지만, 이 때문에 중국 조선족의 술 문화가 통째로 폄하돼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 인식으론 중국 사업의 첫 발자국을 제대로 떼기 어렵다.

생각해 보라. 중국인이나 조선족 모두가 알콜 중독자일 리 없다는 사실은 너무 뻔하지 않겠는가. 다만 날씨나, 음식 문화, 또 생활습관 때문에 그들과 우리가 먹는 술의 농도가 다르고 양에서도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그들이 따르는 술 잔 속에 친구가 들어 있음을 기억하자.

당연히 친구의 의미를 담아 건넨 그 술잔은 미래에 대한 또 다른 약속임을 기억하고, 다시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인지를 거듭 고민하자.

또한 한국 주재원의 이런 고역(?)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한국에서 가는 '윗분'들부터 '걸판 진 이국의 술자리'를 사양하도록 노력하여 보자.

술 잔 속에서 주재원과 진정으로 친구가 되지 못할 바에는….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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