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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그래도 …" 김영란법 이후 첫 언론 초청행사 가보니


달라진 기자 사회, 선물·음식도 안될말…"떳떳하게 취재현장 누빌 것"

[유재형기자] '김영란법' 시행을 두고 청렴사회로 가는 최초의 관문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 관문을 넘은 출발 선상이 28일(오늘)이다.

마침 공직자와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김영란법이 구속한 대상들이 모이는 첫 언론 초청 행사가 열렸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식재단이 주관한 2016월드 한식페스티벌 '개막식'이 그 주인공이다.

한식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보급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엉뚱하게도 김영란법 시행 이후 달라진 분위기 쪽으로 기자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의례적으로 준비한 음료도 안 마시는 기자들도 있어요." 서울 시내 특1급 호텔 연회장에서 열린 이번 행사를 맡은 홍보담당자의 입에서는 "우리도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테이블에서도 어김없이 김영란법이 화제에 올랐다. 한 일간지 기자는 "간담회 참석에 앞서 선임으로 부터 두 번 세 번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나왔다"고 했다. 또 다른 기자는 "호텔 주변에 소위 '란파라치'가 있는 것이 아닌지 살피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사전에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덜컥 겁부터 집어먹게 되더라"며 볼멘 소리를 냈다.

◆ 당신 앞에 음식이 놓이고 "어찌하오리까"

호텔 연회장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홍보대사로 연예인이 소개되고, TV에서 만나던 스타셰프가 한식을 주제로 한 요리를 선보이는 순서가 왔기 때문이다. 이 스타셰프는 노련한 솜씨로 우리 농산물을 재료로 한식을 재해석한 샐러드 음식을 접시에 담아냈다. 이윽고 이 레시피는 호텔 측 조리사들의 손에 의해 사전에 준비된 모양으로 각 테이블에 배달됐다.

'아, 드디어 첫 번째 시험이구나.' 기자들은 잘 차려진, 최고급 호텔 조리사들의 손을 거친, 스타셰프의 레시피로 차려진 이 '대단한' 음식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이었다. 누가 먼저 수저를 드는가 싶더니만 그는 재료만을 살피고는 곧바로 수저를 내려놨다. 여기자 몇몇은 스마트폰으로 음식 사진 찍는 일에 열중했고, 나머지는 분위기만 살피는 눈치였다. 그렇게 첫 번째 음식은 원형을 간직한 채 테이블 밖으로 실려 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셰프가 선보인 그 두 번째 음식인 제철 뿌리채소를 곁들인 닭고기 냉채가 등장했다. 음식을 놓고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던 첫 번째 경우와는 달리 더욱 풍성해진 접시를 놓고 누군가 불만을 드러냈다. "음식 품평을 하려면 맛이라도 봐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도 말뿐이었다. 모두들 내색하지 않았지만 '첫 번째 범법자'로 기록되는 것만은 피하자는 인식이 머릿속에 자리했다.

◆ "그래도, 이제 안 먹을래요"

그렇다면 또 다른 규제대상자인 공무원이 앉은 테이블은 어떨까. 프레스 테이블 분위기와는 달리 그들은 자신의 부처가 주최한 행사라는 점을 인지한 듯 너무도 태연스럽게 접시를 비워나갔다.

한 한식페스티벌 관계자는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김영란법을 너무 협소하게 보면 주최한 측도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식으로 제공되는 요리도 아니고 이번 행사의 주제 맛을 소개한다는 취지에서 제공한 소량의 음식까지 검열 잣대에 올린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기자들의 입에서는 "오늘 간담회 경험을 시작으로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누렸던 편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맛보기 쿠킹쇼에 불과했다. 개막식 행사 종료와 함께 오찬 행사를 알리는 사회자 안내 멘트가 등장했다. 메뉴로는 그 이름마저 먹음직스러운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세계인이 좋아하는 한식 10선'이었다. 메인요리는 강원도산 황태로 얻은 구이덮밥이 등장했다.

대부분 기자들은 음식이 등장하기 전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소수 기자들의 생각이 '이런 덮밥류는 음식 값이 3만원을 넘지 않을 테니 나는 먹고 갈래', 혹은 '정부 주관 공개행사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되는 음식인 만큼 김영란법 적용대상이 아닐거야'라고 나름의 해석을 내린 듯 보였지만 대다수는 '일단 취재 대상이 제공하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는 교육을 받은 터였고 그것을 실천했다.

◆ '명예'를 권한 청탁, 결국 김영란법과 기자는 이해당사자

김영란법 적용 이후 첫 번째 점심시간을 맞아 '김영란법 엄수'라는 단어가 든 장문의 편집국장 지시사항이 재차 스마트폰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음식을 권하는 자와 거부한 자 간의 가벼운 실랑이도 보였지만 김영란법 적용 첫날 분위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안 먹고 안 받을래요"로 요약됐다.

7년차 한 언론사 유통부 기자는 "그래도 기자로서 명예회복의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동안 기자들을 바라보는 인식이 '뭘 바라는 사람'으로 오해해 불편한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행사장을 나서면서 이 기자는 이런 말을 던졌다. "선배, 이제 떳떳하게 취재현장을 누비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9월 28일 오전. 으레 기자들에게 주어졌던 그 흔했던 '선물'도 없이, 달랑 보도자료 한 장 들고 그 후배는 '기자의 길'을 걸어 호텔을 빠져 나갔다.

유재형기자 webpoe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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