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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는 마법사가 아닌, '되려는' 감독이다


기다림이 없다면 매직도 없다

[최용재기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매직을 쓰는 '마법사'였다면? 파라과이에 대승을 거두고 브라질 월드컵 8강에 올랐던 강호 코스타리카에도 승리했을 것이다. 요르단 정도의 약체는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고, 40년 동안 이어져오던 이란 원정의 저주도 가볍게 풀었을 것이다.

마법사의 매직이 이어진다면 55년 동안 우승하지 못했던 아시안컵 우승컵을 들어 올릴 것이고, 아시아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것이며, 더 나아가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역대 원정 월드컵 최고의 성적을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마법사가 아니다. 현역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유명한 선수였지만 감독으로서는 그렇게 유명한 감독이 아니었다. 감독으로서 이렇다 할 업적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마법사가 아닌, 마법사가 '되려는' 감독이다. 그렇기에 슈틸리케 감독은 기대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감독이다. 세계적 명장은 아니지만 분명 한국 축구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을 품은 감독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대표팀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과 태도, 그리고 생각에서 이런 부분을 느낄 수 있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진심을 느꼈고,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도 봤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감독으로서는 뚜렷한 업적이 없다는 말에 "한국 감독으로서 업적을 만들기 위해 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사실 40년 동안 이어져온 이란 원정의 저주를 슈틸리케 감독이 풀어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욕심'이었다. 지난 40년 동안 그 누구도 풀지 못했던 숙제를, 한국대표팀을 맡은 지 단 4경기 만에 풀어내라는 것은 지나친 압박과 다름없었다. 풀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이번 이란 원정으로 대표팀이 무언가라도 하나 배웠으면 된 것이다.

골 결정력 부재도 마찬가지다. 이는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한국 축구의 영원한 고질병이다. 단 4경기 만에 이를 해결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마법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여러 공격수들을 실험해보고 최적의 공격 조합과 전술을 찾고 있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시간을 가지고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온 슈틸리케 감독이다.

다가오는 아시안컵도 마찬가지다. 슈틸리케 감독이 55년 만에 한국의 우승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역시 욕심이다. 강요와 압박이 될 수 있다. 한국 감독으로 부임한 후 이렇게 단기간에 월드컵 다음으로 큰 대회를 우승으로 이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발전 가능성, 경쟁력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우승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이는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감독직을 수락한 그 시점부터 동의가 된 사항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임기는 4년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다. 대한축구협회는 그 때까지 슈틸리케 감독과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 약속했다. 따라서 월드컵 본선이 끝날 때까지 슈틸리케호는 성적이 아닌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 잦은 감독 교체의 폐해를 더 이상 이어가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낸 계약이었다.

따라서 욕심이 아닌, 합리적인 기대는 아시안컵이 끝난 다음부터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슈틸리케 감독을 향한 기대는 욕심이 아니다. 한국이 승리하기를 바라야 하고,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월드컵 본선에 오르기를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 월드컵 본선, 사실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으로 온 이유다. 마법사가 되려는 슈틸리케 감독의 '최종 목표'다. 지금은 분명 마법사가 아니지만 4년 후 슈틸리케 감독이 어떤 매직을 선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슈틸리케 감독의 매직이 보고 싶다면, 슈틸리케 감독이 마법사가 되기를 바란다면 4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림이 없다면 매직도 볼 수 없다. 어떤 세계적 명장의 마법도 준비하고 예열하는 시간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 예열 시간을 좀 더 단축하는 것은 감독의 역량이 되겠지만 분명 예열이 없으면 매직도 탄생하지 않는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거스 히딩크 감독의 경우에서 확인하지 않았던가. 히딩크 감독도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초창기 '오대영 감독'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기다림의 과정을 거친 후 히딩크와 태극전사들은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일궈냈다.

지금은 슈틸리케 감독을 믿고 기다림을 즐겨야 할 때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부담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또 어떤 선수가 잘 했고, 어떤 선수는 빠져야 한다고 논쟁하기보다, 골 결정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 아시안컵 우승을 강요하기보다,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과 방향을 존중해야 할 때다.

슈틸리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대표팀을 도와주는 것이다. 제로베이스에서 그 누구보다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감독이다. 4년의 기다림이 한국 축구에서는 익숙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4년 후의 짜릿함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 다행이다. 맺힌 게 많은 이란전에서 대표팀이 또 패했으니 예전 같았으면 비난 일색이었겠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그동안 보여준 행보로 인해 한 번 믿어보자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이런 기다림의 문화가 앞으로 더욱 정착되기를 바란다.

최근 박지성도 이런 말을 했다. "새 감독이 왔고 그가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물론 우승을 하면 좋지만 원하는 우승은 힘들 수 있다. 주변의 우승 기대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새 감독과 4년의 계약을 했고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지 않느냐. 팬들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좋은 모습만 보여줘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참패 후 한국 축구는 외국인 감독을 간절히 바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2의 히딩크 매직'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히딩크 매직'도 월드컵에서 나온 것이다. 평가든, 찬사든, 비난이든 러시아 월드컵으로 향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지켜보고 난 다음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마법사가 아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마법사가 '되려는' 감독이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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